[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중대장이 "머리 왜 안 잘랐냐"고 물었습니다. 분명히 며칠 전에 자르라고 했는데, 그대로였거든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귀찮아서 안 잘랐습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지난 11월13일 오후 마산여자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가족이 4교시 시험을 마친 수험생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대장은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귀찮아서' 안 자른 것이 맞습니다. 명령이 내려왔는데 못 자를 이유가 없지요. 매일 3시간30분씩 쪼개 자는 살인적인 근무는 변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를 수는 있었겠지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렇게도 고지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사람을 만나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하다 보니 어느새 '능청스러움'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태생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어디서 왔는지 모를 선비님이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특히 마음이 가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괜히 작아 보이고 싶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 서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는 부탁을 하다가, 정말 토를 할 것 같았습니다.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미래의 딸을 생각해. 딸이 '아빠, 나 학원 하나 더 보내줘야 하는데 고작 그런 걸로 쩔쩔맬 거야?'라고 한다고 생각해봐."
순간, 여자친구 닮은 딸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습니다. 맞습니다. 미래의 딸에게만 부끄럽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미래에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아들, 사랑해!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