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둔 유통가는 벌써 크리스마스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트리 하나 장식 하나에도 공을 들이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브랜드마다 거대한 공간과 체험형 콘텐츠를 앞세워 머무는 연말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데요. 소비자들이 단순히 쇼핑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으로 재해석된 셈입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롯데월드타워 광장을 유럽형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확장하며 연말 테마 경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13m 높이의 트리와 눈이 내리는 연출, 회전목마 등이 어우러지며 사실상 야외형 테마파크에 가까운 모습을 갖췄죠.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을 중심으로 한 ‘트리로드’와 본점의 원더랜드 마켓을 통해 도심 속 연말 명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은 지난해보다 한층 확대된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을 선보였고, 오픈 전 사전 예약에만 4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백화점들이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과 인터랙티브 장치, 조형물을 경쟁적으로 배치하는 이유는 명확한데요. 체류 시간을 늘릴수록 매출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연중 가장 큰 매출을 기대하는 4분기 공간의 힘을 다시 증명해 보이겠다는 전략이 엿보입니다.
호텔은 올해 유독 케이크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한 방은 단연 서울신라호텔의 50만원대 트러플 케이크입니다. 하루 3개만 판매되는 이 케이크는 출시 직후 SNS에서 연말 대표 아이템으로 떠오르며 화제성을 독점했습니다.
예년까지 호텔들이 크리스마스 장식과 호캉스로 고객을 끌어들였다면 올해는 케이크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를 대변하는 상징 상품이 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연말 케이크 매출이 평소 대비 2~3배까지 뛰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작은 디저트 하나가 호텔의 연말 전략을 대표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죠.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등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블랙프라이데이와 계절 수요 증가가 겹친 11~12월을 맞아 역대급 최저가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이 체험으로 고객을 붙잡는다면 온라인은 한정 할인과 실시간 장바구니 전환율로 승부하는 방식입니다.
올해 연말 마케팅의 공통점은 소비의 중심이 물건보다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화려한 트리, 더 비싼 케이크 더 거대한 마켓이 등장하는 이유는 고객들이 연말 분위기 자체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SNS 인증이 하나의 소비 행위가 되고, 사진 한 장이 방문 동기를 만들며 공간은 단순한 매장이 아닌 ‘머무는 장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늘 유통가의 최대 성수기였지만 올해는 경쟁의 방식이 한층 다층적입니다. 테마파크 같은 마켓, 오브제 중심의 체험형 연출, 프리미엄으로 무장한 케이크, 온라인의 가격 경쟁까지 브랜드별 전략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인데요. 고객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연말 소비는 단순 구매가 아닌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거리의 불빛이 화려할수록 유통 시장 역시 더 복합적이고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12월의 소비는 결국 기분 좋은 순간을 누리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