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동네가 몇 군데 있었습니다. 서촌, 상수, 후암동, 망원동 같은 곳입니다. 홍대나 강남처럼 번잡하지 않고, 프랜차이즈 맛집보다는 오래된 식당과 동네의 결이 남아 있는 공간들이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느끼기 어려운 마을의 정취가 있어서 더 아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가지 않습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가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됐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분위기가 좋았던 건데, 유명해진 순간 내가 알던 감성은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단골 가게가 변한 탓이 아닙니다. 사람과 웨이팅이 기를 빨아버립니다. 아무 때나 편히 들르던 곳이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면, 마치 친했던 친구가 어느 순간 멀어진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실 좋아하던 곳이 장사가 잘되면 기뻐야 할 텐데, 그조차 반갑지 않게 느끼는 제 마음이 이기적이라는 것도 압니다.
이효리씨가 연희동에 '아난다 요가'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쁘기보단 '역시…' 하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던 동네였고 '나일롱' 신자였지만 가끔 연희동 성당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사러가 쇼핑'과 이연복 셰프의 '목란' 정도만 알려져 있던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감각 좋은 연예인들은 대체로 유행과 흐름에 민감합니다. 부동산 투자의 귀재라는 코요태 출신 가수 빽가는 유튜브 방송에서 낮은 건물이 밀집한 오래된 동네가 '큰 수익을 낼 동네'라며 투자 팁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동네는 땅값이 비교적 싸고, 재개발되면 수익이 크게 나는 구조라고 하면서요.
이런 '트렌드 세터'들이 동네에 가게를 내거나 건물을 사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그러면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임대료도 오릅니다. 결국 원래 있던 소상공인들은 밀려나게 됩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입니다.
한때 '○○○길'의 원조로 불리던 강남구 가로수길의 공실률이 44%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2018년 애플스토어가 들어오면서 애플이 20년치 임대료를 600억원이나 지불했고, 그 영향으로 20평도 안 되는 상가 월세가 1200만원, 관리비는 200만원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상인들이 버티지 못해 떠났고, 한때 서울 대표 상권이던 곳은 예전의 명성을 잃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좋아하는 감성도 자본에 비례합니다. 저렴한 곳에서 아기자기하게 장사하던 가게들은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효리의 요가원도 '피켓팅' 경쟁이 치열합니다. 저도 몇 번 예약을 시도해봤지만 체감상 1초 만에 마감되었습니다. 그녀와 수련을 하고자 찾는 사람들만큼, 연희동 젠트리피케이션도 앞으로 가속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요즘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집 앞 스타벅스입니다. 조용하고, 웨이팅 없고, 편합니다. 규격화된 맛과 서비스가 오히려 안정적이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이기심까지 포함해서,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 '아난다 효과'를 만든다는 것을 알지만요.
가수 이효리가 10월1일 서울 광진구 풀만 앰버서더 서울 이스트폴에서 열린 '저스트 메이크업' 제작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