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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규제’라는 암초 만난 K-방산
입력 : 2025-12-05 오전 10:35:34
최근 한화오션이 폴란드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 ‘오르카(Orka)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마셨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까지 폴란드에 총출동해 전방위로 수주전에 힘을 보탰지만, 결국 사업은 스웨덴 방산 기업 사브(Saab)에 넘어갔다. 
 
스웨덴 업체 사브(Saab)가 지난달 발표한 폴란드 잠수함 사업 수주 보도자료 캡처. (사진=사브 홈페이지)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수주전만큼은 한화오션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폴란드가 요구한 기술 이전, 가격, 납기 조건을 가장 충족하는 국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스웨덴은 비용 부담과 일정 준수 측면에서 제약이 있다는 평가였다. 오죽하면 한화오션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입장문까지 낼 정도였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도 폴란드의 최종 선택은 사브였다.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핵심은 정치적·지정학적 요인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이번 사업을 통해 발트해 안보 재편, 유럽 산업·국방 블록과의 협력 등을 내세워 사브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결국 기술 경쟁전 사업인 줄 았았던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전략·외교가 얽힌 복합전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로비’라는 단어다. 로이터 등 외신은 이번 폴란드 수주전을 두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사브가 오르카 사업을 따내고, 영국 방산 기업 밥콕(Babcock)과의 일부 거래가 포함되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가 폴란드 정부에 영향력을 일부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폴란드 내부에서는 한국산 잠수함 수주에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한국산 무기 도입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과 유럽산 구매를 권장하는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까지 나서 로비를 행사했다면 폴란드로서는 사실상 스웨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반복돼왔다. 지난해 4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영국 국방부의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 독일 제품에 밀렸고, 2023년에는 노르웨이가 차기 전차 사업에서 한국의 K2 ‘흑표’ 전차 대신 독일 ‘레오파르트 2A7’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독일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했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과 한국이 아닌 유럽 무기를 사자”고 공개적으로 독려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해외 방산 수출을 위해서라면 로비 제도 자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연하게도 수주전에서는 변수를 하나라도 줄여야 유리하지만, ‘로비’라는 요소 때문에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시작한다는 얘기다. 한 군사 전문가는 “미국, 호주 등은 로비가 합법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가 심한 상황”이라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만으로 해외 방산업체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도 벅찬 상황에서, 로비까지 막혀 있다 보니 수주전에서 막판에 밀리는 모양새가 종종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번 오르카 수주전은 국내 방산업계에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로비’라는 단어는 여전히 ‘뇌물’ ‘부정 청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부정적이고 음습하게 들리지만, 해외에서는 제도 안에서 관리되는 공식적인 영향력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글로벌 수출이 국가 전략인 시대에, 최소한 방산·조선처럼 해외 수주전이 핵심인 일부 분야에서만큼은 ‘로비’ 규제와 제도의 방향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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