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준 쿠팡 대표(왼쪽)와 브랫 매티스 쿠팡 CISO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현안질의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택배·물류센터 사망사고는 한국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빠른 편리함’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쿠팡은 한국에서 탄생했지만,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고 미국식 경영과 자본 논리를 앞세워 성장해왔습니다. 특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비효율이라 비판하던 서구식 경영 방식이, 한국에서는 “더 빠른 배송, 더 빠른 처리”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장악했고,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속도 중심 구조는 보안, 노동, 안전에 대한 책임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쿠팡이 제공한 빠른 배송과 간편한 입점은 많은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물류센터에서는 잦은 과로와 사고가 보고됐고, 노동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됐습니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노동력과 시스템을 극도로 압축하는 구조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은 다른 차원의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소비자 불안과 ‘탈쿠팡’ 흐름은 쿠팡을 주요 판로로 삼아온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일부 판매자들은 매출이 급감했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거래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습니다. ‘편리함’이 제공한 성공의 기회는, 동시에 불안을 기반으로 한 위험한 의존 구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쿠팡의 속도 중심 문화는 한국에서 더욱 강하게 정착됐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는 ‘빨리빨리’를 스스로 비판해왔지만, 정작 기업은 이를 가장 강력한 수익 모델로 활용했습니다. 빠른 배송과 서비스로 돈을 벌면서, 보안과 안전과 같은 기본적 책임은 천천히, 혹은 나중으로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보안, 안전, 노동권 같은 기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천천히’ 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시간이 들고 비용이 들며, 단기 성과를 해칩니다. 그래서 기업은 이를 후순위로 밀어두지만, 그 결과는 결국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속도와 편의를 무비판적으로 환영했고, 기업은 그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개인정보 유출, 소비자 불신, 소상공인 피해, 노동자 안전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모두가 ‘빠르게 얻은 편리함’의 결과이자 비용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배송이 아니라, 기본을 지키는 속도입니다. 보안과 안전, 생태계와 노동을 고려하는 방식의 성장이어야 합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