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밤 10시30분. 갓 100일이 지난 아기를 재우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계속 진동이 울렸다. 아기의 단잠을 방해한 것은 ‘비상계엄’ 선포였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밤을 지새웠던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복직 후 만난 재계 관계자들은 그날을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 앞이 비상계엄을 막으려는 시민들로 붐비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계엄령 소식을 듣고 곧바로 비상 연락을 가동하고, 다음날 오전 긴급 대책 회의를 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비록 6시간에 불과했던 계엄의 시간이지만, 그 충격파는 한국 경제 전 영역을 휩쓸었다. 무엇보다 산업 현장에 몰아닥친 혼란이 적잖았다. 비상계엄 선포에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고, 코스피는 4거래일 연속 급락하며 시가총액 144조원이 증발했다. 당장의 혼란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재계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국내외 신인도의 급락이었다.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는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권교체가 이어지면서 일정 부분 해소됐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랠리가 이어지면서 코스피 지수는 4200선을 돌파했으며,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폭탄도 일단락된 상황이다.
그러나 계엄 선포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당시 SK의 긴급 회의, HD현대의 새벽 사장단 소집, LG의 재택근무 권고 같은 조치들은 위기 대응을 넘어 한국 경제가 정치적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방증하는 것만 같다.
이제는 계엄 사태가 남긴 유산을 평가해야 한다. 빠른 반등을 보인 일부 대기업과는 달리 산업계도 구조적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 수출·대기업·반도체 중심의 회복은 동반성장이 아닌 ‘선별적 회복’에 그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온도차는 더욱 벌어졌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고착하면서 물가 불안이 고개를 들고, 기업의 부담도 커지는 실정이다. 계엄으로 촉발된 정책 공백의 유탄이 아직도 산업계를 조준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