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하며 '충암파'로 지목됐던 윤석열씨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지난해 12월3일 발발한 불법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모교인 충암고는 하루아침에 ‘내란고등학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학교 이름만으로 위협을 느끼고 조롱을 견뎌야 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당시 ‘충암인의 피눈물’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인생의 황금 같은 시절을 보낸 공간이 난데없이 ‘반란의 본거지’처럼 호명되는 현실이 참담했기 때문입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혹독했던 당시 상황이 생생합니다. 계엄 선포 직후 학생들은 교복을 입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길에서 시비를 걸거나 스쿨버스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아무 죄가 없었지만, “충암고를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 시절을 견딘 후배들의 마음속에 어떤 상처가 남았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시 칼럼은 동문들 사이에서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속이 시원했다”고 말하는 선배도 있었고, “이제는 출신 학교를 말하기 부끄럽다”고 푸념하는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를 그렇게 비꼬아도 되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확실한 건 그들 모두 불명예스럽게 언급되는 모교에 대한 상실감과 애증의 감정이 뒤엉킨 모습이었습니다.
그 혼란은 동창회 일정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재개하려던 동창회는 결국 취소됐습니다. 서로 얼굴 마주하고 좋은 추억을 나누려던 자리는 사라지고, 여전히 동네를 지키고 있는 몇몇 친구들만 고깃집에서 조용히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걸로 대체했습니다.
1년이 지나 윤석열씨는 탄핵됐고 새로운 이재명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요동치는 정국 속에서 모교 주변은 조금씩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올 가을 취재 분야 일로 모교 일대 주거지와 상권을 둘러볼 일이 있었는데, 계엄 당시 얼어붙었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분식집에서는 20여년 전 저를 보는 듯한 학생들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떡볶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촌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그토록 싫어했던 교복이 다시 보니 참 예뻐보이기도 했고요.
‘계엄고’니 ‘내란고’니 조롱의 대상이 됐던 장소가 다시 평범한 ‘고등학교’의 얼굴을 되찾은 것입니다. 여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다지 잘난 학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문도 모른 채 욕을 먹을 학교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충암야구부를 응원하는 응원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충암 충암 일어섰다. 한데 뭉쳤다.”
지난해 그 ‘뭉침’은 참담한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문과 후배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켜주는 따뜻한 의미의 ‘한데 뭉침’으로 되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