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공지능(AI) 관련 이슈는 없나요?” 출입처를 만나면 가장 먼저 꺼내게 되는 질문이다. AI가 워낙 화두이다 보니, 관련된 새로운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다. 다양한 답변이 이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해운업의 변화가 가장 인상 깊다. 첨단 센서·통신 기술이 결합된 자율운항 선박과 전방위적 디지털화 등으로 현장의 업무가 줄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AI 도입 이후 인력은 줄었지만, 자동화로 규모가 작아진 자잘한 업무들이 남은 인력에게 떠넘겨지면서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작은 선박에도 승선 인원이 40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급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조차 20명 안팎의 인력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가 자동화됐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챙겨야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과거 여러 명이 나눠 하던 업무를 한 사람이 모두 떠안는 구조가 됐다”며 “예컨대 통신사들이 하던 역할을 이제는 항해사에게 통신 자격증까지 요구하며 맡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직업 기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해운 업계는 해기사 감소와 고령화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 해기사 비중은 높은 반면, 긴 승선 기간과 열악한 근무 여건 등으로 양질의 일자리에서 멀어지면서 젊은 세대들의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해기사는 선박 운항에 전문 기술을 가진 인력으로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이 속한다.
향후 해기사 공급 부족과 해운업 불황이 겹치면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해기사 공급 부족 규모는 559명이다. 이는 내년부터 오는 30년까지 976명, 1433명, 1922명, 2431명, 2958명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각종 분석 기관들은 해운 시장이 일시적 조정을 넘어 근본적인 하락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분석하며 불황이 2028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AI 전환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인력 구조와 근무 환경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기술 도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자동화가 인력 부담을 덜어주는 혁신이 되려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제도 보완과 지원책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