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결정을 몇 사람이서 그것도 합의 없이 툭 던지듯 내릴 때, 일상 속에서도 불만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가족 여행지를 정할 때를 생각해 엄마와 아빠의 결정에 의한 결정에 아이들은 불만을 내비칩니다. 엄마와 아빠 둘이서 '이번엔 산으로 간다'하고 확정해버리면 누군가는 바다가 좋고, 누군가는 놀이공원이 가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의견을 듣지 않은 채 결정된 여행은 결국 가는 내내 투덜거림이 따라붙습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하죠. 위선에서 갑자기 업무 방식을 바꿔버리면, 정작 그 일을 실제로 하는 직원들은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왜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그게 정말 좋은 방향인지'도 검증할 시간이 없는 까닭입니다.
최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전신인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가 행정법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이뤄진 의결은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의 본질을 거스른 처분이라는 겁니다.
10월1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관계자가 방송통신위원회 현판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합의제 기구가 중요한 이유도 결국 이와 비슷합니다. 혼자 또는 소수의 판단에 기대면 견제 장치가 사라집니다. 또 다른 시각, 더 넓은 현실, 놓치고 있는 위험을 함께 살펴볼 기회도 사라집니다. 방통위가 다루는 문제는 단순한 가족 여행이나 사무실 규칙이 아니라 국민의 정보권, 방송의 독립성, 표현의 자유처럼 훨씬 큰 파장을 만드는 일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각이 모여 서로 의견을 깎고 다듬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해봐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말이죠. 가정도, 회사도, 친구 사이도 결국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훨씬 단단해진다는 걸요.
합의제 기구는 그 원리를 제도 안에 넣어둔 장치입니다. 서로의 다른 눈을 빌려 더 넓게 보고, 예상치 못한 실수를 미리 걸러내는 안전장치 말이에요.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조직도, 제도도, 그리고 우리의 사회도 안정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거대한 합의의 기술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합의들을 통해 일상을 지켜내왔고, 그런 경험은 제도가 왜 합의의 힘을 필요로 하는지, 조용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되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