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모습. (사진=한국수력원자력)
국내 건설업계가 오랜 침체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주택시장 부진과 해외 플랜트 수주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이라는 블루오션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팀코리아)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 사업비 26조원 규모입니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의 대형 수출 쾌거입니다. 현대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시공을 맡습니다.
더 주목할 곳은 미국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30년까지 대형원전 10기 신규 착공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100GW인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4배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문제는 미국 내 원전 건설 역량이 오랜 공백으로 크게 약화됐다는 점입니다. 이 틈새를 한국 건설사들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이미 텍사스 페르미 아메리카 프로젝트에서 AP1000 원전 4기에 대한 FEED(기본설계) 계약을 따냈습니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에서도 웨스팅하우스와 협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2026년 초 EPC 본계약이 유력합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건설이 2026년 한 해에만 불가리아, 미국 등에서 원전 수주 소식을 연달아 발표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한국 건설사들의 무기는 'On Time On Budget', 즉 공기와 예산을 지키는 능력입니다. 한국의 원전 건설비는 1기당 약 6조~8조원으로, 미국(12조~15조원)이나 프랑스(11조~20조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계획 대비 실제 비용도 거의 1배 수준으로 관리됩니다. 프랑스나 미국 업체들이 예산의 2~4배를 초과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DL이앤씨는 미국 X-Energy와 표준화 설계 용역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성공하면 향후 SMR 시공사로 참여할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원전 프로젝트는 정치적 변수에 민감하고, 인허가 지연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하고, 유럽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으로 회귀하는 흐름은 거스르기 어렵습니다.
주택과 토목에 의존하던 건설업의 체질이 바뀌고 있습니다. 원전이 건설사들에게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수 있을지, 2026년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