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방조, 위증 등 혐의 한덕수 전 국무총리 10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처음 봤던 모의고사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3월 모의고사 정도일 겁니다. 고등학생이 됐다는 설렘은 모의고사라는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하루 종일 시험 문제를 푼다는 압박감에 집중력이 떨어졌고, 이 시험이 빨리 끝나기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날 모의고사에서는 국영수(국어·영어·수학) 말고도 사회탐구 영역 시험도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험을 망친 국영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많은 사탐 과목 중 윤리를 선택했는데, 만점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3년 모의고사 중 유일한 만점이었던 만큼 아직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3월에 본 고1 모의고사는 배운 적도 없는 과목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아직도 문제를 풀던 과정이 기억나는데요. 단지 문제를 보고, 내가 생각하는 '옳음'이라는 가치만을 가지고 풀었습니다. 한 가지 가치만을 생각하고 내린 결과는 우연히 좋았죠. 하지만 이때의 기억에 의존해, 윤리라는 과목을 택한 뒤로는 결과가 처참했습니다. 좋았던 기억은 미련만 남길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고1 모의고사가 생각이 난 건, 대통령실의 중동·아프리카 4개국 순방을 동행한 직후입니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순방에서 '실용외교'는 더 돋보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윤석열씨의 '가치 외교'가 돋보인 순간이었죠.
지난달 19일 재판에서 윤씨는 12·3 계엄 직전에 열린 G20 등의 다자회의를 거론하며 "소위 말해서 좀 포퓰리즘적인 좌파 정부 정상들을 대거 초청을 해놨다"고 언급했습니다. 정권 내내 외친 '가치 외교'가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상상을 해보건데, 윤씨가 가치 외교의 맛을 본 순간은 제가 윤리에서 만점을 받은 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워싱턴 선언' 등을 통해 핵협의그룹(NCG)이 출범했습니다. 당시 최대 성과로 뽑을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문제는 첫 번째 성과가 윤석열정부에 독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가치관이 옳다고 밀고 나가는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겁니다. 윤석열정부는 잘못된 가치관, 어쩌면 한 번 맞았을 가치관만을 가지고 임기 내내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12·3 계엄이라는 결과물까지 나온 겁니다. 오로지 하나의 가치는 야당을 적으로만 판단했고, 문제를 제대로 풀어 나갈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한 채 G20을 좌파 국가가 모인 다자회의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