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턱이 아픕니다. 긴장해서 저도 모르는 새 이를 꽉 깨뭅니다. 잘 때도 이를 갑니다. 빠드득빠드득.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 중인 국보 '이순신 장검'. (사진=연합뉴스)
잠꼬대마저 적대적입니다. 온 세상에 '적'뿐입니다. 적어도 무의식은 그렇게 인식하는 듯합니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三尺誓天 山河動色),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 장검'에 쓰인 글귀입니다. 칼 길이는 각각 196.8㎝와 197.2㎝로, 사람의 키를 훌쩍 넘습니다. 지휘용 칼입니다.
칼자루 속 숨은 쇠심인 슴베에는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1594년 4월은 전란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 강화 교섭이 진행되면서 전황은 잠시 소강상태였지만, 전염병과 기근으로 진중에서는 병사들이 연일 쓰러졌습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큰 전투 없이 지루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느슨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다잡고 적과 맞선 현실을 일깨우고자 두 자루 칼에 스스로의 뜻을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번뜩이는 칼날과 달리 이순신은 매우 섬세하고 다정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백성의 고통에 괴로워하며 상대의 행동 하나에도 상처받는 인물.
그런 성격은 바로 신체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힘이 들어도 그는 금세 앓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아팠고 늘 고단했으며, 위장은 쓰렸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군으로서 항상 품위와 권위를 지니고 부하들을 대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기를 택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담겨 있고, 정적인 원균을 향한 원망도 여과 없이 기록돼 있습니다. 자신의 병약한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며, 술과 놀이에 기대는 모습 또한 숨김없이 적어두었습니다.
감정의 분출구이자 일종의 치유 수단. 외적 압박이 거세고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는 일기를 통해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했습니다.
바탕화면에 '난중일기' 폴더를 만들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