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반도체 업계를 취재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에 입이 벌어지곤 했다. 분기 영업이익 ‘10조원’라는 수치는 이전 출입처에선 본 적이 없었다. 10조라는 숫자만큼이나 내 눈길을 끈 것은 ‘슈퍼을’로 불리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이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만 해도 대당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장비를 시장에서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3회 국제첨단소재기술대전’에서 업계 관계자가 반도체 세정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부장 경쟁력 확보는 필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첨단산업 선점을 위한 기술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첨단산업 소재 기술 수준은 83.3점이다. 이는 미국(100점), 일본(96.1점)에 비해 격차가 크고, 중국(80.5점)과의 격차도 2.8점에 불과해 간극이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제2차 소부장 경쟁력 강화 기본계획’과 ‘소부장 특화단지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소부장 육성 지원에 나섰다. 첨단제품, 고부가제품, 탄소중립, 핵심광물 등 4대 도전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프로젝트당 20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15대 슈퍼을’을 육성하고, 소재 기술 점수도 오는 2030년 92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소부장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소부장 업체들에도 눈길이 쏠린다. 한미반도체는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생산용 TC본더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며 절대강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선익시스템 역시 디스플레이 증착기 시장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와 8.6세대 제품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주성엔지니어링, 리노공업 등 여러 소부장 업체가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며 슈퍼을로 성장 중이다.
이들의 성장세가 계속되기 위해선 단기적인 사업 지원보다는 장기적이고 선행적인 연구 투자가 중요하다. 특히 소부장 업체는 기업간거래(B2B)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신뢰도 확보 차원에서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소부장은 첨단산업 경쟁력의 근간이다.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같은 호재가 이어지려면, 이들에게 지원이 절실하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