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국민 노후가 환율 방파제인가
입력 : 2025-11-28 오후 4:14:1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최근 환율 상승은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독특한 쏠림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원·달러 환율 상승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신용 위기'의 신호였다면, 지금은 내국인의 해외투자 확대가 만든 '구조적 달러 수요 우위'가 원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의 역할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환율 수준에 맞춰 정책을 신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달러 강세로 해외투자 수익률이 높아 보이는 것은 착시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금 지급 시점에 대규모 환전을 할 경우 원화 강세가 나타나 실현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연금–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 정례화 추진 정책도 거론됩니다. 두 기관의 스와프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100억달러 규모로 처음 도입됐고, 올해 말까지 650억달러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스와프를 상시화하면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자금을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지 않아도 돼 환율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과 해법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환율 상승에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타당하더라도, 그 해법이 왜 국민연금으로 수렴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는 사실상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의 운용 전략을 조정하라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으며, 환율 불안을 '노후자산 동원'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통화스와프의 정례화가 곧바로 국민연금 수익률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 설계에 따라 장기 성과 훼손 위험은 분명합니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거론하며 달러 매입 시점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경우, 투자 판단이 정책 목적에 종속될 수 있습니다. 스와프 금리나 조건이 시장 대비 불리하면 국민연금이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스와프가 동반하는 환헤지 효과는 달러 강세 구간의 환차익을 제한해 장기 수익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스와프 가격이 시장과 괴리될 경우 차익거래 세력이 이를 활용해 무위험거래를 시도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환율 상승의 원인은 해외투자 외에도 존재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기준 국내 기업의 외화예금 월평균 잔액은 918억8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수출 증가율이 2%에 그친 반면 외화예금은 8.8%나 늘어, 기업이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달러로 보유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기업에 '달러를 환전하라'고 강제할 수 없으며, 개인에게 '해외주식을 사지 말라'고 명령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민 노후자산인 국민연금을 사실상 환율 방어 수단처럼 활용하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미 기금의 58%인 771조원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으며, 올해 해외투자 평가액만 70조원 증가했습니다. 장기 전망에서도 연평균 수익률 4.5% 유지 시 2047년 2895조원, 5.5% 적용 시 2071년 36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거대한 기금 운용은 전문성과 독립성에 기반해야 하며, 환율 급변 시 대응 역시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외교·안보가 얽힌 환헤지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조정으로 해결될 성질도 아닙니다.
 
원화 약세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 장치처럼 언급하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으며, 관치 금융 논란만 키울 위험이 있습니다. 장기 고갈 우려가 거론되는 국민의 노후자산을 정책적 목적에 따라 동원하려는 접근은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환율 변동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정책당국의 본래 역할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SNS 계정 : 메일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