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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책이 만든 '도시의 민달팽이'
입력 : 2025-11-26 오후 6:12:52
요즘 집을 보러 다니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방 구조와 채광을 확인하러 간 것인데 어느 순간 제 앞에서는 대한민국 전체의 주거 정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매도인은 "요즘 다 이 가격입니다"라고 말하고 은행은 "그 가격 아닙니다"라고 하고, 정부는 "과열 신호입니다"라고 주의를 주고 정치인은 "전세입니까, 월세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집 하나 보러 간 것일 뿐인데 나라가 먼저 제 앞에서 토론을 시작하는 풍경입니다.
 
최근 국회 운영위에서 벌어진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공방은 이 현실을 해학적으로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전세·월세·임대주택·전세대출이 한꺼번에 등장하며 "정부가 청년을 월세로 몰아넣는다",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강한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말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집을 찾는 실수요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가 만들어낸 구호가 아니라 전세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대출이 실제로 나오느냐, 살 집이 있느냐입니다.
 
직접 시장을 돌아보면 더욱 어이없는 장면도 펼쳐집니다. 남성역 부근 32평형의 KB시세는 8억4000만원인데 실제 매물은 10억5000만원에 나와 있습니다. 노들역 부근 23평형은 KB시세가 9억6500만원이지만 매물은 11억8000만원입니다. KB가 보는 집값과 시장이 부르는 집값은 마치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웃긴 건, 이렇게 가격이 벌어진 이유 중 상당수가 '재건축 호재'라는 한 문장입니다. 재건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집값은 이미 완공 후 프리미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실수요자는 과거 시세를 기준으로 대출을 받으라는 은행 창구 앞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시장 안에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부동산 타임머신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저는 요즘 스스로를 '민달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껍데기를 등에 지고 이동하는 달팽이와 달리, 저는 껍데기 없이 도시 곳곳을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신세입니다. 실거주해야 하지만 살 집은 멀어지고 대출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집값은 미래로 달아나 있습니다.
 
정치권은 전세냐 월세냐로 싸우지만 껍데기 없이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 도시에서 내 몸뚱이 하나 누울 자리가 현실적으로 있긴 한가요?
 
정치권은 요즘도 쉽게 팔리는 말들을 잘도 꺼내 듭니다. "사다리를 걷어찼다", "월세를 강요했다", "청년을 버렸다." 듣다 보면 부동산 토론이 아니라 대사 읽는 드라마 같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서 발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그런 장면 연출이 아닙니다.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는 치솟았고 대출은 중간에 멈추고 분양가는 달나라로 갔습니다. 정치권은 사다리를 논쟁하지만 우리는 사다리건 계단이건 발 디딜 판 자체를 못 찾고 있습니다.
 
결국 내 몸 하나 눕힐 자리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운 나라라면, 부동산 대책보다 먼저 '민달팽이 보호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4일 서울 잠수교에서 바라본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 모습. 국가데이터처 주택소유통계와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작년 서울 30대 무주택 가구는 52만 7,729가구로 전년보다 1만 7,215가구(3.4%) 늘며 2015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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