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연말 ‘5천피’라는 말이 나올 때만 해도 허황된 기대쯤으로 여겨졌다. ‘박스피’의 오명을 벗고 45년 만에 4천선을 돌파하자 시장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미장으로 떠났던 개미들이 국장으로 서둘러 돌아온 이유일 것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스피 4000p 돌파 기념행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수는 날아오르는데도 정작 많은 이들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듯한 기분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포모 증후군(FOMO: 혼자만 소외되는 듯한 불안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재확산되는 이유다. 코인 투자로 인생 역전했다는 지인들의 무용담이 다시 회자되고, 곳곳에서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이 들린다.
주가 상승의 수혜층이 ‘60대 여성’이라는 통계도 흥미롭다. NH투자증권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60대 이상 여성 투자자들은 평균 26.9%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전 연령·성별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우량주 중심의 장기 투자, 낮은 회전율,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비결로 꼽힌다.
주목할 부분은 개인투자자 절반 이상이 여전히 ‘손실’ 상태라는 사실이다.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벌었다면 누군가는 잃었을 터.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한곁같이 “어렵다”고 한다. 반도체만 호황일 뿐 이들도 초대받지 못한 신세다. 행사조차 줄여야 할 만큼 여건이 팍팍하다는 하소연도 뒤따른다. 그런데도 주가는 고공행진이다.
코스피는 수출주 비중이 높은데, 올해는 ‘트럼프발 관세’ 영향으로 수출이 썩 좋았던 것도 아니다. 내수는 말할 것도 없다. 유통, 건설 등 내수 업종은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부동산에 잠겨 있던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며 체질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주가가 실물 경기보다 선행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괴리는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의식은 여당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만난 관계자는 “정권 교체 후 이룬 것은 주가뿐”이라고 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 거품 붕괴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내놨다. 대통령 한마디에 수십 년 박스권에 묶여 있던 지수가 4천, 5천을 논할 정도로 뛴다는 건 펀더멘털이 허약하다는 방증이다.
최근 일본 닛케이지수가 사상 첫 5만을 돌파했지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실물 경제를 ‘개판’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흥분보다 냉정함이 필요한 때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