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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산 가전 무덤이라는 '허상'
입력 : 2025-11-25 오후 4:08:09
최근 다녀온 일본 여행은 여러 추억을 남겼지만,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숙소마다 비치돼 있던 헤어드라이어였다. 유후인의 료칸부터 기타큐슈의 숙소, 하카타의 멘션까지 지역과 분위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헤어드라이어만큼은 모두 파나소닉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이얼. (사진=뉴시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산 가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표로만 접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여행 중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실을 직접 체감하게 된 점이 오히려 새로웠다고 할 수 있겠다.
 
가전과 관련해 놀랄 만한 일은 여행 마지막 날 또 있었다. 기념품을 사러 후쿠오카 텐진의 ‘돈키호테’로 향하던 중 근처 전자상가에 들렀는데, 파나소닉과 샤프 같은 전통적 일본 가전 사이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바로 하이얼이었다. 외산 가전의 무덤이라 불리던 일본에서 자사 제품을 당당히 전면에 내세운 모습은, 삼성·LG 양강 체제가 굳건한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샤오미를 떠올리게 했다.
 
상세히 짚어보자면, 하이얼의 일본 시장 공략은 샤오미의 한국 진출보다 훨씬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였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일본에 진출해 일본 기업을 인수하고 가격과 품질로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파나소닉 산하 ‘산요전기’의 세탁기·냉장고 사업 부문을 인수해 유통망과 기술력을 획득했다. 다른 기업들이 못 버티고 일본 시장을 떠날 때도 끈질기게 버틴 성과라 할 만하다.
 
다른 사례도 있다. 중국 기업 하이센스는 일본 T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도시바 TV 사업부를 인수했고, ‘TOSHIBA’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일본 소비자들이 가진 외산 가전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TV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은 50%대로 추산된다.
 
이제 국산 가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한국 시장도 중국 기업들의 본격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다양한 중국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로봇청소기 시장의 경우 중국산 점유율이 이미 50%를 넘어섰다. 
 
한국 소비자들은 국산에 애착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외산에 닫힌 것도 아니다. 싼데 효율까지 좋은 제품을 막연히 ‘외국산이니까’라며 거부하지 않는다. 한국 가전업계도 일본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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