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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
입력 : 2025-11-24 오후 11:01:37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여성학을 공부했습니다. 
 
연극 '밑바닥에서' 공연 모습.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오해는 마세요. 페미니스트 아닙니다. 될 수도 없고 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단지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여겼어요. 세상의 절반이 여자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고서, 어떻게 기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자가 될지가 중요했습니다. 사실과 의견이 뒤섞이고 진실이 조각난 단면으로 흩어지는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이미 잘 알아서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수업 들을 때, 저는 문외한에 가까운 분야 강의만 골랐고 여성학 수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학점이 엉망이죠.
  
덕분에 여성에게 씩씩대며 제 콤플렉스 떠넘기는 불쌍한 신세는 면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혼숙려캠프'를 보다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역시 불쌍한 사람하고는 결혼하는 것 아냐."
 
-내가 불쌍할 때도 있어?
"있지. 지난번에 빚내서 주식 했다고 했을 때."
 
서부지법으로 달려갔거나 이준석을 향해 열광하던 비슷한 또래 남성들을 보며 '불쌍하다'고 여겼었는데, 저는 그저 '덜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서 불쌍해지는 일을 겪습니다. 언젠가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를 제대로 연출한 연극을 보고 싶습니다. '밑바닥'이 현재 제가 있는 위치라고 느껴서요.
 
조바심이 납니다. 전 재산이 주식에 들어가 있는데, 밑바닥에 있는 제게 그것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동 사다리'입니다.
 
"자본시장이야말로 서민의 계층이동 사다리"라던 이언주 의원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발언을 비판하는 글을 써놓고서, 그 가르침대로 살고 있습니다.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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