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셋집을 구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10층 언저리의 집을 보여주던 부동산 중개업자가 말했습니다. "바로 코앞이 초등학교라 더 좋아요." 아들이 초등학생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네,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보러왔어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녀의 말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아뇨, '뷰'가 안 가려진다구요."
나중에 보니 그 집의 반대편 집 창문 앞에는 재개발 중인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건물이 지어질 일은 없으니 이 집은 전망이 계속 좋을 거라는 뜻이었던 겁니다. 결국 그 집을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전에 살던 2층 집에서도 달이 주변 고층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아 당황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엔 어디서든 볼 수 있던 넓디넓은 하늘이, 이제는 귀한 풍경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서울시는 10월30일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를 최고 145미터까지 올리는 내용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고시했습니다. 이에 유네스코는 종묘 인근 고층 건물 개발이 세계유산을 훼손할 수 있다며 영향평가를 반드시 받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20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도 "2018년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 인가는 오랜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며 "서울시가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고도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세계문화유산인 강남 선정릉은 고층 건물들 속에서도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며 "선정릉은 되고 종묘는 왜 안 되느냐"고 맞서고 있습니다.
노후화된 수십층 건물을 해체하고 새로 짓는 일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공사비용은 급등하고, 공사 과정 중의 리스크와 원주민 주거 부담도 커집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땅의 가치'를 이유로 용적률과 시세를 계산합니다.
사실 수도권의 높은 땅값을 생각하면 그것은 분명히 남는 장사일 것입니다. 건물은 낡아도 땅값은 오르며, 조합원들은 지분만큼 새 아파트를 저렴하게 배정받습니다. 집값이 오르고 나면 매매 차익을 얻습니다. 결국 '지분 가치·분양 수익·시세 차익'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가 고층화를 멈추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한국의 인구 감소로 언젠가 부동산 불패 신화가 멈춘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폰지 게임'으로 변질되지 않을까요?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가면 많은 이들이 "가슴이 뻥 뚫린다"고 말합니다. "왕은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았다"며 감탄하지만, 사실 고궁의 매력은 고밀도 도시 한복판에 남아 있는 드문 '열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변경안대로 종묘 근처에 빌딩이 들어선다면, 그 열린 하늘은 다시 좁아질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문득 달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종묘를 가리려 하는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마음속의 욕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운4구역주민대표회의 관계자들과 토지주들(왼쪽 아래)이 11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앞 광장에서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인근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도록 허가하는 서울시 도시 정비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에 대해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