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항공모함을 보내 윤석열을 구출한다" 이처럼 일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에선 괴상한 주장을 해왔습니다. 탄핵 정국에서 수세에 몰린 특정 정치 세력이 기댈 곳이 없자 만들어낸 일종의 희망 회로였습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 꿈꿨던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상식적 수준에서만 생각해도 이 논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선 항공모함이 한강까지 진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강버스'조차 강바닥에 걸려 좌초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수심이 얕습니다.
운이 좋게 항공모함이 한강으로 입항해도 이는 명백한 미국의 '내정간섭'이 됩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를 외국 군대가 특정 정치인의 지위를 위해 움직인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꼴입니다.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조차도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과 윤석열씨는 만난 적도 없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해당 음모론의 확산 이후 미국 정부도 인식을 달리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 관련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의 비공식 번역문을 다시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회복력을 입증한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에 비춰'라는 부분입니다.
이 한 문장이 가진 함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극우 세력이 주장해온 '부정선거론'을 한국과 미국이 공식 문서에서 단칼에 정리해버린 겁니다. 물론 우리 정부가 요청하고 미국 측이 이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큰데요. 문구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치밀한 조율을 거쳐 반영되는 영역으로 해당 문장이 등장했다는 것은 양국의 의도된 메시지라고 해석됩니다.
주목할 점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지금과 달랐다는 점입니다. 지난 8월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에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상황을 과장되게 인식한 배경엔, 미국 내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국내 극우 세력의 음모론적 메시지가 일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는 그동안 알려진 여러 정황과도 부합합니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후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한·미 정상의 첫 대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두 번째 만남에선 금관 선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감히 한국 내 극우 세력의 음모론적 선동은 더 이상 미국에 먹히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문서에 명시됐으니까요.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을 공식 문서에서 재확인한 이상 극우 세력이 설 곳은 더 좁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