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의 공항이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또다시 수조원이 투입되는 공항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운영 중인 15곳 중 11곳이 수백억원대 적자를 기록하는데도 8곳을 더 짓겠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공항 한 곳을 건설하는 데만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포퓰리즘성 사업’이라는 비판이 항공업계에서 거세다.
코로나 팬데믹이었던 지난 2020년 4월,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가 텅 비어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공항은 인천·김포·제주·김해·청주·양양·무안·사천·울산·포항경주·광주·여수·대구·군산·원주 등 15곳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공항은 인천·김포·제주·김해 등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11곳은 모두 적자다.
실제로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은 7411억원, 김해공항 662억원, 제주공항 566억원, 김포공항 32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반면, 무안(-241억원), 양양(-224억원), 여수(-204억원) 등 지방공항 대부분은 줄줄이 수백억원의 손실을 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가덕도·백령도·서산·새만금·흑산도·울릉도·대구경북통합·제주2공항 등 8곳의 신공항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공항 건설 투입 비용이 수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수요·재정 구조로는 지속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김해와 김포 등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나머지 적자 공항을 메우는 구조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 상태에서 신공항을 추가로 늘리면 공항공사는 재정 압박에 직면하고, 혈세는 목적 없이 새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이 바뀔 때마다 지역 공항이 ‘표심용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특혜 논란이 반복되는 점도 업계가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새 공항 건설보다는 미래 항공운송서비스 방향을 고려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UAM은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를 이용한 운송서비스를 말한다. 이차 전지를 탑재한 eVTOL은 탄소 배출이 없는 데다 활주로도 필요하지 않아 공항처럼 막대한 기반시설 투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마다 ‘지옥철’로 불리는 수도권 2호선·김포골드라인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증편 대책이 번번이 좌초된 가운데 정부가 UAM 상용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 대학 교수는 “필요성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 없이 공항을 우후죽순 늘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만 갉아먹는 일”이라며 “신기술 기반의 미래 교통체계를 고려한 공항 정책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