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이 '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실없는 말이 송사 간다' 등의 속담과 격언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말은 조심해야 하기도 하지만, 시기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우리 역사에서도 말 한마디로 역사상 가장 빛나는 외교적 성과를 이룬 사람도 있는데요. 바로 고려 성종 때 외교관인 서희입니다. 서희는 당시 거란(요나라)이 고려를 침공하며 고려가 자신들에게 복종하고 송나라와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했을 당시 대표로 나서 거란군을 이끌던 소손녕과 단판을 벌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반대로 과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중국 정부에게 절대 '사드 배치'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2016년 사드 배치를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효자 상품들은 수출길이 막히기 시작했고, 중국과 관계도 나빠질 때로 나빠졌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동안 한국 정부가 '절대 안 하겠다'고 표명했던 말을 갑작스레 변경한 것이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을 듯합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중국은 당시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한령' 즉 한국 콘텐츠와 연예인의 중국 내 활동을 제한하는 비공식적인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조치가 해제되지 못한 것은 윤석열정권에서 또다시 말실수를 했기 때문인데요. 정권을 잡자마자 윤석열씨는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에 다소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를 '양안 발언'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중국에서 주장했던 '하나의 중국'과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 대중국 수출은 급감했습니다. 중국은 한국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였던 만큼 중국과 관계 악화는 곧 전체 수출 실적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중·일 관계도 심상치 않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제자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가 집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거졌습니다. 다카이치는 '극우' 인사로 알려졌는데,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내용 발언으로 뜬금없이 '대만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로 인해 잠자던(?) 중국의 코털을 건드린 거죠.
중국은 즉각 반응하며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했습니다. 이후 '수산물 수입 중지'까지 통보하면서 관계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핵심 산업은 자동차가 1위이고, 그 뒤를 잇는 것은 관광업입니다. 그러나 중국 여행객의 줄이은 일본 여행 취소로 인해 관광업은 위기를 맞게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실제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에서 소비한 총액은 약 1조6443억엔으로 한화로는 약 15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를 분기별로 나눠 계산해보면 약 5조1666억원이란 엄청난 금액입니다. 결국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인데요.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위치와 함께 말의 무게를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