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미래 신산업 투자는 물론 협력사 상생,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하지만 정작 이번 발표에서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1차 협력사가 올해 실제 부담한 대미 관세를 소급 적용해 전액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지금 자동차 부품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1차 협력사들은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데도 관세를 떠안으며 버티고 있다. 완성차업체가 가격 인하 압박까지 더하면 적자 전환은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관세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단순한 지원책이 아니라 협력사의 생존 패키지인 셈이다.
더욱이 이번 조치는 소급 적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지불한 관세까지 되돌려준다는 건, 협력사들이 올 한 해 감수했던 손실을 현대차가 떠안겠다는 뜻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지원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과거의 고통까지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당장 현금흐름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1차 협력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2~3차 협력사까지 혜택을 확대하는 다양한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함께 발표했다.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피라미드 구조다. 1차 협력사가 무너지면 그 밑의 2~3차 협력사는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린다. 관세 지원을 1차에만 국한하지 않고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물론 125조 투자도 중요하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일이다. 협력사들이 관세 부담으로 쓰러지는데 혼자 살아남기 어렵다. 현대차는 이번 발표를 통해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책임지는 기업의 역할을 보여줬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