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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와 경영 능력
입력 : 2025-11-17 오후 5:06:40
지난달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승진하며 오너 경영 체제의 서막을 알린 것으로 시작으로 SPC그룹의 허진수·허희수 형제, 삼양식품의 전병우 전무, 국제약품의 남태훈 대표 등 3세대 경영인들이 연말 인사에서 그룹의 핵심 보직을 맡으며 전면에 나서고 있다.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가 지난 6월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삼양식품)
  
이들 기업은 이번 인사에 대해 시너지 극대화와 중장기 방향성, 조직 내 리더십 역량 등을 고려한 조처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대전환으로 생존을 위한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뉴노멀’의 한복판에서 키를 잡을 인물로 오너 3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입사 몇 년 만에 임원을 달고 최고경영자(CEO)로 초고속 승진을 하는 이른바 오너 3세의 모습은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오너 1세대처럼 맨땅에서 사업을 일궈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거나, 2세대처럼 회사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거나 하는 눈에 띄는 실적이 없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의 경우 창업주인 고 전중윤 회장 손자이자 김정수 부회장의 아들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상무 승진 이후 2년 만에 전무로 올랐다. 1994년생인 전 전무는 2019년 삼양식품 해외전략부문 부장으로 입사한 이듬해인 2020년 경영관리부문 이사로 승진하며 식품업계 오너 3세 가운데 최연소 임원 기록(만 29세)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업계를 넓혀보면 20대 임원 자리에 오른 인물도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회장, 이웅열 명예회장 모두 20대에 임원이 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3세 경영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또한 반도체를 중심으로 호실적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보면 오너 3세라고 해서 기업 능력까지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오너 3세 경영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한 의사결정인 만큼 신사업 발굴이나 투자 결정에 속도를 낼 수 있고 책임경영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유수 기업들이 출신보다는 능력 위주로 최고경영자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가업 승계 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여전하다. 
 
특히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0대 재벌 중 대우, 쌍용 등 16개가 부도로 쓰러졌는데 이들 대부분이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 경영인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 능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은 필수적이다. 
 
결국 한국 기업의 오너 3세 경영 본격화는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역량을 갖춘 젊은 리더십은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충분한 검증 없는 승계는 또 다른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투명한 의사결정과 책임경영, 그리고 실적으로 검증된 능력만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백아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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