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날씨’가 경제를 흔드는 시대입니다.
예전엔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고 제철이 오면 먹거리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달력보다 기온이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는 말 그대로 ‘기후 적응 산업’으로 진화 중입니다.
최근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뜨거운 열(heat)과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기후 이상이 원재료 값을 올리고, 소비자 물가로 번집니다. 한여름 열기는 식당 메뉴판을 덥히고, 한파는 난방비와 전기요금을 끌어올립니다.
가장 민감한 분야는 단연 먹거리 시장입니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가 돌아가며 덮치니 농작물은 버티기 어렵습니다.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가격이 출렁이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최근 커피, 올리브유, 밀가루 값이 다시 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형마트들은 이제 ‘기후 리스크’를 물류비나 인건비 못지않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기후 영향 상품지수’를 만들어 농가와 계약 재배를 늘리며 안정적 공급망을 다지고 있습니다.
패션업계도 계절을 잃었습니다. ‘봄 신상’, ‘가을 컬렉션’이란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요즘엔 ‘투 시즌(two season) 시대’라고 합니다. 무더위를 버티는 냉감 의류는 일 년 내내 매대 위에 걸려 있고, 겨울이 짧아지다 보니 다운 재킷은 재고로 쌓이기 일쑤입니다.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고 생산·유통 계획을 수정하는 ‘패스트 리플레시’가 새로운 생존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계절이 아닌 데이터가 신상품의 시계를 돌리는 셈입니다.
소비 습관도 달라지면서 유통업계는 이제 ‘일기예보형 마케팅’이라는 신종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최근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점포 리뉴얼 때 ‘인테리어 예산’보다 ‘냉난방 효율’을 먼저 계산한다고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비 트렌드가 산업을 움직였지만, 오늘은 기후가 소비를 결정하고 있는 겁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닌 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지표가 됐습니다. 유럽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 마일드 파커는 "올해 여름은 앞으로 다가올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기후변화가 앞으로 더 좋아지긴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기후변화라는 변수가 '상수'가 된 만큼 기업들의 적응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