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가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좌우 날개가 필요하다는 '양 날개론'이 있습니다. 뜻은 좌우가 균형을 맞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원론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양 날개론에서는 좌우 날개를 설정합니다. 이 좌우 날개에는 각자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변화와 개혁을, 보수는 전통과 안정을 중시하는 정치 세력입니다.
이러한 기본 개념을 토대로 진보와 보수는 경제와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반도 문제로 국한한다면 현재의 진보는 대화를 통한 평화에 방점을 찍고 있고 보수는 안보에 의한 평화를 중시하는 모양새입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보수는 미국 눈치 보느라, 진보는 북한 신경 쓰느라 잠재적 핵 능력 확보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 역시 비슷한 차원입니다. 이는 사실상 진보와 보수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틀' 안에 존재한다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0년도 전의 정치는 오히려 그 틀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보수 진영도 진보 진영도 마땅히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틀을 깬 인물입니다. 그중 노예제도 '폐지'는 보수 진영의 공화당으로서 혁신적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링컨은 보수를 '가장 오래된 이상을 가장 새롭게 실현하는 정신'으로 정의하며 보수의 혁신을 택했습니다.
1994년 영국 노동당이라는 진보 진영의 당권을 잡았던 토니 블레어도 시장과 복지를 결합하는 '제3의 길'을 제안했고, 시장의 효율을 추구하는 보수적 가치를 받아들였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각자의 관성 아래서 정해진 룰을 실천하기보다는 틀을 깬 '혁신'을 이행했을 때,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12·3 비상계엄으로 무너져가는 우리 정치에도 이러한 반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진보가 보수의 역할을 주장할 때, 보수가 진보의 역할을 주장할 때 통합도 발전도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재명정부가 추진한 원자력추진잠수함과 일본을 향한 '투트랙' 외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기존 진보의 관성에서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보수의 차례입니다. 12·3 비상계엄의 틀에서 벗어나, 오히려 진보적 가치를 이재명정부에 요구할 때 '희망'이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간단한 '생각의 반전'이 문제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