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I 로직, AMD.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이력서를 채우는 기업 경력은 이 두 곳이다. 하지만 그 두 곳을 거친 젠슨 황은 실리콘밸리의 지도를 바꿔 놓았다. LSI 로직에서 반도체를,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담당하던 청년 엔지니어는 1993년, ‘AI 제국’ 엔비디아를 세웠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CEO 서밋'에서 특별세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뉴시스)
최근 한국에서도 ‘젠세너티(Jensanity·젠슨 열풍)’가 불었다. 지난달 30일 젠슨 황은 서울 삼성동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깐부 회동’을 가졌다. 세계 산업계를 움직이는 세 리더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받았지만, 화제의 중심은 단연 황이었다.
그는 회동 도중 치킨집 밖으로 나와 시민들에게 치킨, 감자튀김, 김밥, 바나나맛우유를 나눠 주며 웃었다. 검은 재킷 차림에 양손에는 치킨과 감자튀김을 든 모습. 글로벌 시가총액 5조달러(약 7290조원) 기업의 수장이라기보다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AI 황제 실물 영접”, “깐부에서 젠슨을 만날 줄이야”라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의 수장이지만 시민들과 어울리며 치킨을 나누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 오너나 CEO의 행보와는 정반대이기에 더욱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의 모습은 그의 지난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황의 이력은 ‘흙수저 신화’에 가깝다. 9세 때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15세에 ‘데니스(Denny’s)’ 식당에서 버스보이(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돕는 종업원)로 일했다. 20대 후반에는 그 식당 구석 테이블에서 휴렛패커드(HP) 출신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IBM 출신 커티스 프림과 함께 하루에 커피를 열 번씩 리필해가며 토론했다. 그곳이 엔비디아의 첫 사무실이었다.
이처럼 AI 제국의 시초는 학교도, 차고도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탄생한 셈이다. 그렇게 아이디어로만 시작된 대화는 30년 뒤 세계 AI 생태계를 움직이는 실체가 됐다.
이제 AI 없이는 현시대를 설명하기 어려운 지금,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21세기의 금’이라 불린다. 일론 머스크조차 “엔비디아 칩은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젠슨 황은 여전히 ‘현장형 CEO’를 자처한다. 스스로를 “엔지니어일 뿐”이라고 말하며, 기술의 본질은 속도보다 ‘의미 있는 혁신’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력서엔 단 두 개의 기업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단 두 줄의 이력서로 세상을 바꾼 사나이. 그를 향한 ‘젠세너티’는 단순한 열광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리더십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