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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 황의 치킨 맛 외교
입력 : 2025-11-04 오후 5:25:27
지난 1일 막을 내린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아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였다. 
 
2010년 이후 15년 만에 한반도 땅을 밟은 그는 단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남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깐부 회동’을 나누고 국내 정부 및 기업들과 파트너십 체결하며 화려한 ‘쇼맨십 외교’를 펼쳤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기자들에게 빼빼로를 나눠 주고 있다. (사진=백아란기자)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먹고 마시고 선물한 모든 제품과 장소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점령하며 수많은 게시물을 만들어냈고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삼성, SK, 현대 등 한국 빅3 그룹의 총수를 만나고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황 CEO의 모습은 소탈하게 비쳐졌고, 이 모든 과정은 미디어의 렌즈에 포착되도록 전략적으로 배치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들이 조직 내 임직원과의 관계를 통해 리더십을 드러냈다면, 젠슨 황은 정부, 기업, 시민, 미디어와 같은 글로벌 스테이크홀더들과의 관계 속에서 리더십을 구축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기술 보유국입니다. 메모리에 견줄 만한 게 있다면 후라이드 치킨 정도일 겁니다.” 
 
31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또다시 ‘치맥 형제’를 거론했고 기자들과 빼빼로를 나눠 먹으며 특유의 위트를 뽐냈다. 앞서 ‘한국 국민을 기쁘게 할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깜짝 선물을 예고했던 엔비디아는 이날 26만장에 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 한국 기업에 공급하는 내용을 공표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26만장의 GPU가 단순한 공급 계약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제조와 AI 전 영역을 엔비디아 생태계로 끌어들이려는 큰 그림이고, 한국을 반도체 AI 팩토리 구축과 로봇, 자율주행 등 ‘피지컬 AI’의 테스트베드로 시험·확대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제조업체가 엔비디아 생태계에 묶이고 엔비디아 GPU 중심의 AI 생태계가 공고해지면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선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 과제로 작용할 수 있다. AI의 국가적 자급자족을 위해선 우리 자체의 칩 기획 능력 역시 필요한 까닭이다. 
 
젠슨 황의 1박 2일은 국가 간 정책을 움직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며 국내 대기업 회장들까지도 그의 무대로 불러내는 초국적 리더십으로 진화했다. AI 인프라에 대규모 지출을 촉구하는 동시에 하드웨어와 AI 모델에서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미국 AI 수출을 지향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공식 대사 역할도 수행한 것이다. 
 
“우리가 대규모 GPU를 구매하는 건데 무조건 고마워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최근 만난 모 기업 임원의 평가다. 엔비디아의 생태계에 강력하게 종속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우리가 받은 선물이 사실 미국 AI 패권 전략의 일부였고, 그것의 실행자인 젠슨 황의 손에서 모든 것이 우아하게 조종되고 있다는 것은, 치킨이 식은 다음에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백아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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