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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난민
입력 : 2025-11-03 오후 5:29:34
 
(사진=뉴시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9월 통계를 보면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65.3%에 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1년 새 월세는 무려 38.8%가 늘었지만 전세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숫자로만 봐도 '전세 없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변화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당국이 집값 안정화를 명분으로 쏟아낸 각종 규제가 전세 시장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10·15 대책은 서울과 경기권 대부분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어버렸고, 실거주 의무 2년을 내세워 전세를 활용한 주택 매입 자체를 차단했습니다. 여기에 DSR까지 대폭 강화하면서 대출 문턱은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의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실제 거주가 목적인 일반 서민들까지 함께 베이고 있습니다. 6·27 대책으로 전세 자금 조달이 막힌 데 이어, 10·15 조치로 전세 자체가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피해 규모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서울 지역 아파트 월세는 올 들어 무려 7.25%나 뛰었습니다. 최근 10년간 가장 가파른 오름세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가격 상승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집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월세로 옮겨 간 이들은 매달 훨씬 큰 주거비 부담을 안게 됩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월세 거주자는 소득의 21.5%를 주거비로 쓰는 반면, 전세나 자가 거주자는 8.5%에 불과합니다. 월세로의 강제 전환은 곧 가계 경제의 직격탄을 의미합니다.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계층 상승 경로의 차단입니다. 그동안 전세는 단순한 거주 방식을 넘어 자산 축적의 통로였습니다. 보증금을 차곡차곡 모으고, 이를 종잣돈 삼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게 평범한 가정의 전형적인 생애 주거 설계였습니다. 하지만 전세가 빠르게 소멸하면서 이 같은 경로 자체가 막혀버렸습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이들은 이제 집을 소유할 기회조차 잃은 채 영구임차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당국은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손 놓고 지켜볼 문제가 아닙니다. 최소한 집을 사기 위해 애쓰는 무주택 실수요자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들만큼은 예외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에겐 전세 대출 문호를 넓혀주고, DSR 잣대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미국처럼 저소득 가구의 임대료 일부를 공적 재원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급격한 월세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안정화는 분명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보호해야 할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아서는 곤란합니다. 지금의 정책이 오히려 '전세 난민'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는 역설을 직시해야 합니다. 투기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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