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절대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말 것.” 예전에 다니던 회사 선배가 워크숍에서 했던 말이다. 사회부부터 시작해 30년 넘게 기자로 살다 보니, 인상 좋은 사람은 죄다 감옥에 가 있더라는 농담 섞인 경험담도 덧붙였다. 그럴듯한 미소 뒤에는 날 선 이익 계산이 숨어 있게 마련이라는 뜻이었을 터다.
그럼에도 사람 마음이란 단순하다. 초면에 살갑게 다가와주는 사람, 잘 웃어주고 호응해주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마음이 간다. 긴장된 첫 만남에서 먼저 손 내밀어주는 한마디의 온기가 얼어붙은 공기를 녹여주기도 한다.
요즘 기자들의 취재 환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유튜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고 받아쓰는 ‘단독’ 기사들이 있을 정도다. 기업 기자실은 사라지고 발로 뛸 현장이 줄어드는 가운데, 남들이 쓰지 않은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국회와 정부를 기웃거리게 된다.
정치부 출입 경험이 없지만 몇 차례 국회 의원실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얼굴을 트고 아이템을 설명하면, 처음엔 시큰둥하던 보좌진도 눈빛을 반짝이며 협조적인 태도로 변하고는 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귀찮다는 듯 대충 받아 적고 마는 태도를 보이지만 막상 성실히 정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받아주는 경우다.
최근 국정감사 시즌이라 평소에 눈여겨보던 아이템과 관련해 국회 한 의원실에 자료 요청을 했다. 정부의 한 해 살림을 따지는 자리지만, 국회의원에게는 ‘스포트라이트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건이라도 눈에 띄는 자료를 찾아내야 하는 보좌진들의 열정과 기삿거리에 목마른 기자들의 절박함이 맞물리는 시기다.
어느 의원실에 연락할까 고민하다 지난해 연말 인사차 국회를 돌았을 때 가장 친절했던 보좌관이 떠올랐다. 격하게 반겨주며 조만간 의원님과 식사 자리를 잡겠다며 설레발을 치던 여성 보좌관이었다.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적극적으로 나오며 “하루 만에 자료를 받아 주겠다”고 날짜까지 못 박아 확답을 줬다. 바쁜 시기에 자료를 보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가급적 한 번에 끝내야 한다며 내용을 더 확실히 정리해달라는 역대급 까다로운 요구도 그저 믿음직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는 날, 요청한 자료가 타사에 넘어가 단독으로 보도된 걸 확인했다. 구상했던 기사의 ‘핵심 포인트’까지 고스란히 담긴 채였다.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한 보좌관은 적반하장식의 태도로 나왔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보좌관의 지나친 적극성은, 결국 다른 목적을 향한 ‘호의’였다는 것을.
기자는 늘 ‘사람’을 취재하지만, 정작 사람에게 가장 자주 속는 직업이기도 하다. 열심히 들어줬는데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다. 친절할수록 경계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