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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자리
입력 : 2025-10-28 오후 2:57:41
지난주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장거리를 오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요. 바쁜 일정 속에서 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따스함을 마주했습니다. 
 
(이미지=챗GPT)
 
일요일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는 저녁 기차를 제외하고 모두 매진이었습니다. 이미 예약해둔 기차가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떠서 앞선 기차들을 잡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치열한지 한 자리가 나서 앱 화면을 터치했지만 '잔여석 없음'이라는 문구가 뜨기를 반복했습니다. 겨우 입석과 좌석이 섞인 자리를 하나 잡았습니다. 편안하게 좌석으로 앉아 가갈 바랐지만 가릴 계제가 아니더군요. 
 
울산-동대구까지 입석이고 동대구-서울까지 좌석인 줄 알고 결제를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가까운 동대구까지 좌석이고 그 이후로 2시간 정도를 서서 가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수수료까지 내며 기존 표도 취소했기에 정신이 없는 스스로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상한 채 기차에 올랐습니다. 찰나의 쉼이 끝나고 동대구역이 다가오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이석을 찾아다녔습니다. 
 
KTX에서 각 객차에 있는 문 옆에는 간이석이 있습니다. 간이석에는 저처럼 입석인 분들이 앉을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일어선 채 그대로 서울에 도착할 것만 같았거든요. 좁은 통로에 빽빽하게 모여 어색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자니 눈이 질끈 감겼습니다. 특실이 있는 앞쪽 객차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좌석 수가 일반 열차보다 적다 보니 타고 내리는 사람도 적습니다. 간이석의 경우 승객들이 승·하차하는 매 역마다 일어나 자리를 접어야 하는데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일단 특실이 있는 객차로 향했습니다. 
 
어디에도 빈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운을 믿으며 기다리는 것이 맞는가. 고민하다 2개 객차 정도는 간이석에 앉은 이에게 도착지를 물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서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동했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대전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도 대전이라고 합니다. 대전이면 그래도 40분 정도 기다리면 됩니다. 서울보다 훨씬 낫습니다. 자리를 잡으면 전자책을 읽을 요량으로 노래를 들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 여성이 저에게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대전에 내린다던 분이었습니다. 됐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프다는 말도 안 되는 귀여운 핑계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빈자리를 놓고 그녀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자리에서 조금 달아난 그녀 때문에 자리에 앉긴 앉았으나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녀는 한참이나 가야 하는데 말이죠. 다시 한번 그녀에게 이제 허리 아프지 않을 테니 앉으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저도 예전에 양보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다음에 다른 분께 양보하시면 돼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했습니다. 지하철처럼 금세 내리는 거리도 아닌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했고, 그 양보를 받은 누군가가 저에게 또 양보를 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자리에 앉아보려고 전략을 짜던 제 모습과 대비됐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를 혹여나 빼앗길까 봐 역에 정차해 자리를 접어야 할 때 자신의 소지품을 놓아 영역 표시를 하기도 했던 자리였는데 말이죠. 저는 가방에 있던 과자와 지역에서 산 명물 빵을 꺼내 그녀에게 쥐어줬습니다. 
 
그녀가 내린 대전역에서 제 옆에 있는 간이석에도 자리가 났습니다. 제 뒤로 자리를 기다리던 분이 앉았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 이쯤에서 양보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그 뒤로는 입석이지만 가장 따뜻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서울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돼 이번엔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 제 앞에 어르신이 섰습니다. 다른 때보다 재빠르게 제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선한 영향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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