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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뒤에 숨은 ‘혹독한 현실’
입력 : 2025-10-24 오후 6:35:57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믿음의 야구’, ‘믿음의 축구’라는 말은 언뜻 따뜻하게 들립니다. 선수를 끝까지 신뢰하고 기다리는 감독의 품격, 그 안에는 인간적인 미덕이 담겨 있지요. 그러나 그 믿음이 경기장 안에서는 종종 ‘고집’으로, 그리고 냉정함을 잃은 판단으로 바뀌곤 합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화 이글스의 김경문 감독은 신예 투수 김서현에게 리그 내내 꾸준히 뒷문을 맡겼습니다. 잠재력이 터진 그는 한화 이글스의 7년 만의 가을 야구를 이끄는 공신이었지만, 시즌 막판에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LG 트윈스와 '건곤일척'의 대결까지 끌어갈 수 있었던 지난 1일 SSG 랜더스와의 시즌 16차전 경기가 대표적이었는데요. 한화가 3점차로 앞서가던 9회 말, 김서현은 여느 때처럼 경기를 매조지하기 위해 올랐습니다. 단 2개의 공으로 2아웃까지 잡아낸 상황, 한화의 승리 확률은 99.4%까지 올라가며 LG 트윈스와 '타이브레이커'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죠. 
 
그런데 그동안 연투를 거듭한 탓이었을까요. 김서현은 대타 류효승에게 안타, 대타 현원회에게 투런 홈런을 맞아 1점차로 쫒기는 점수를 주더니 이후 정준재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그리고 신인 이율예에게 역전 끝내기 투런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습니다. 한화 팬들이 올 시즌 가장 통탄을 금하지 못하는 장면이죠. 
 
그런데 김경문 감독은 이렇게 무너진 김서현 선수를 결국 가을야구에서도 중용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썩 좋지 못합니다. 김서현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4차전에 모두 등판했는데 두 경기에서 피홈런 3개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4차전 김영웅에게 허용한 쓰리런 홈런은 패배의 결정적 장면이 됐죠.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중요한 상황이 온다면 김서현을 계속 기용할 뜻을 밝혔습니다. 팬들은 “믿음이 아니라 무모함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믿음은 좋지만, 그 믿음의 대가로 팀 전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더 이상 ‘낭만’으로 포장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스포츠는 냉정한 결과의 세계입니다. 감독의 믿음이 승리로 이어질 때는 미담이 되지만, 패배로 끝나면 무책임으로 평가받습니다. 결국 ‘믿음’과 ‘집착’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아무리 유망한 선수라도 컨디션이 떨어지고 상대가 그 약점을 파악했다면 벤치에 앉히는 것이 ‘진짜 믿음’일 수 있습니다. 
 
감독의 믿음이 인간미로 포장될 때 팬들은 잠시 감동하지만 결국 성적표 앞에서는 냉정해집니다. ‘믿음’의 아름다움이 ‘혹독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도자의 진짜 용기는 누군가를 끝까지 믿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믿음을 거두는 결단에 있습니다. 
 
그게 믿는 선수를 지켜주는 길이기도 하고요.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송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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