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구출된 64명이 전세기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정부는 "국민 구출의 성과"라고 자평했고 여당은 "신속한 외교 대응"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은 '구출'이라기보다 범죄자 이송에 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송환자 대부분이 인터폴 적색수배자이거나 이미 한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단순한 외교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납치·감금됐다가 끝내 피살된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정부는 급히 대응에 나섰고 전세기를 띄워 대규모 송환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이 원했던 것은 '피해자의 귀환'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데려온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들이었습니다.
정치권의 공방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당은 정부의 '신속 대응'을 강조하고 야당은 '송환 쇼'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이 바란 것은 화려한 귀국 장면이 아니라 감금된 청년의 생존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을 구했다"는 말은 반복됐지만 누구를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내 없었습니다.
물론 송환자 중 일부는 실제로 감금과 폭행을 당한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고수익 일자리를 믿고 캄보디아로 갔다가 여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범죄에 동원된 사례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발성과 강요의 경계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득을 기대하며 스스로 범죄에 가담했다면 피해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속아서 갔다"와 "이익을 기대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법원도 이런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두고 '로맨스 스캠' 수법으로 수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검찰이 징역 8년을 구형했습니다. 이 조직은 이른바 '마동석'으로 불리는 외국인 총책이 이끈 '한야 콜센터'로, 피해자 6명에게서 3억원이 넘는 돈을 빼앗은 혐의가 인정됐습니다. 법원은 앞서 같은 조직의 다른 가담자들에게 징역 1년6개월에서 6년까지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국내 사법부가 잇따라 중형을 내리는 것은 보이스피싱이 단순한 생활형 범죄가 아닌 조직적 사기 행위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진짜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그들이 속여 돈을 빼앗은 평범한 국민들입니다. 평생 모은 돈을 잃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 대출을 떠안고 파산한 노인, 자녀 학비를 잃은 부모들. 이들이야말로 구출되지 못한 국민이며, 이번 사태의 진짜 희생자입니다. 정부의 시선은 캄보디아에 쏠렸지만 피해자의 눈물은 여전히 국내에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 보호"를 강조하지만, 진정한 보호는 누구를 먼저 구하느냐로 증명됩니다. 납치된 청년의 생사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피해자 지원은 미비합니다. 외교적 성과를 내세운 '송환 퍼포먼스'가 진짜 피해자를 가린다면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면피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치안 문제가 아닙니다.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정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납치된 청년은 보호받아야 하고, 스스로 범죄를 택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책임 없는 인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송환'이 아니라 '구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구해야 할 사람들은, 보이스피싱 전화 한 통으로 삶이 무너진 그 국민들입니다.
지난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정부합동대응팀 단장인 김진아 외교부 2차관과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한국인 대상 취업사기·납치·감금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