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했네요.” 추석 직전 만난 기업 대관 담당자의 말이다. 대관 담당자에게 ‘농사’란 1년간의 대관 업무를 뜻한다. 의원실을 돌며 현안을 설명하고 간담회를 주선하며, 기업 입장이 왜곡되지 않게 관리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은 단 한 줄로 평가된다. 그해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임원이나 대표의 이름이 빠졌느냐다.
이철규 국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9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산자위 전체회의를 개회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감 시즌이 되면 기업 대관팀과 국회 보좌진은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증인 명단을 짜는 보좌진은 “이름 하나가 기사 한 줄”이라며 신중을 기하고, 기업 쪽은 의원실을 돌며 이유서를 내고 일정을 조율한다.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증인 명단을 다루는 게 국회 권력의 핵심”이라는 말이 있다. 한 전직 보좌관은 “일단 무턱대고 기업 오너를 건드린 후 필요한 자료를 내놓게 하거나 실무급으로 낮추는 전략을 쓴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보좌관은 “국회 근무 당시 명단에서 증인 빼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고참 보좌관 때문에 근처에도 못 가봤다”고 했다.
올해 국정감사는 유독 복잡하다. 국감 초반엔 200명 가까운 기업인이 증인으로 거론되며 재계 부담이 커졌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기업인 소환 최소화’ 방침을 세우고 대통령이 직접 자제를 지시한 뒤 각 상임위에서 증인 철회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CEO 대신 실무자가 출석해도 되는 사안은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각 상임위가 의결을 마친 명단이 많아 효과는 미지수다.
이미 기업 현장에서 이번 국감은 '벌 세우기'라는 말이 나온다. 안전사고, 노동 문제, 반기업 법안 등 각종 현안이 겹치며 방어선은 뒤로 밀리고 있다. 1년 동안 쌓아온 네트워크와 논리가 증인 명단 한 줄 앞에서 무력화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올해 가을은 기업 대관 담당자에게 ‘수확’이 아닌 생존과 재정비의 혹독한 시간으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