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디즈니씨를 찾았습니다. 작년에 지도와 후기를 살피며 열심히 공부(?)를 했던 터라, 올해는 좀 더 수월하게 다닐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 전, 작년 사진을 뒤져봤습니다. 지난번에 못 해본 걸 해보자는 취지였거든요. 그런데 사진을 보다 보니 "내가 여길 갔었나?" 싶은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사진은 선명한데, 정작 그 어트랙션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가물가물했습니다. 아이에게 물으니 설명을 해주더군요. 하지만 제 기억 속엔 희미했습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 계획을 짰습니다. 날씨도 좋아 즐겁게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지도와 앱에 의지하며 시간을 쫓았습니다. '니모' 어트랙션 대기 시간이 짧게 뜨자 바로 이동했죠. 그제서야 사진 속 장면이 눈앞에 겹쳤고, 비로소 지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낯선 곳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타겠다는 마음에, 인터넷 후기와 앱의 대기 시간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정작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 채 말이죠. 아마 그때 아이가 말하지 않았다면—"엄마, 핸드폰 좀 그만 봐"—이번 여행도 사진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사진 속에 남긴 추억. (사진=뉴스토마토)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추억을 '찍는 것'으로만 남기게 되었을까. 스마트폰 속엔 수천 장의 사진이 있지만, 그 순간의 냄새나 온도, 목소리는 없습니다. 손끝으로 사진을 넘길수록, 마음속 기억은 점점 옅어지더군요.
디지털은 편리합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기억하는 능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는 대신 눈으로 오래 바라보고, 지도 대신 길을 헤매며 우연을 만나고, 알림 대신 지금 내 앞의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들 말입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기억을 대신 저장해주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저장해주진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여행엔 조금 덜 찍고, 조금 더 느껴보려 합니다. 기억은 결국 데이터가 아니라, 그 순간 내 안에 남은 '감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