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의사단체와 약사단체, 한약사단체가 각자 입장을 고수하며 각개전투를 벌이는 요즘입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성분명 처방을 놓고,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사 약국으로 서로 맞붙었습니다.
저마다의 명분은 그럴듯합니다. 대한의사협회가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이유는 약사의 임상 경력과 전문성 부재입니다.
성분명 처방은 특정 제품의 이름을 처방전에 기재하지 않고, 동일 성분 동일 효능을 가진 약의 성분을 적어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내용입니다. 대한의사협회는 동일 성분이라도 환자의 상태, 약리학 및 약동학적 특성에 따라 효과가 달라져 임상 경험이 부족한 약사에게 선택권을 줄 경우 국민 건강 위해 우려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한약사회 주장은 반대입니다. 처방권을 가진 의사가 특정 제품만을 사용하면서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섭니다. 동일 성분의 제네릭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가 이미 허가 당국으로부터 같은 효능, 같은 부작용을 입증해 승인된 만큼 환자 위해 우려가 크지 않다는 것도 대한약사회 주장 중 하나입니다.
한약사 문제에선 약사와 한약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집니다. 한약사 문제는 한약과 한약제제만 취급할 수 있는 한약사가 약국을 개업한 뒤 약사를 고용해 일반의약품과 병원 처방이 필요한 처방의약품을 조제하면서 불거진 논란입니다.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하는 걸 교차고용이라고 합니다.
대한약사회는 약사법상 한약사와 약사의 개념이 구분되고, 교차고용을 하더라도 한약사의 의약품 조제·판매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한약사들을 대변하는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불법이라면 약사가 식물성 소화제, 광물 유래 성분이 포함된 위장약 등 수많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 역시 불법이란 주장으로 맞불을 놓았습니다. 약사법상 동물과 식물, 광물에서 채취한 생약을 한약으로 분류한다는 게 근거입니다.
각자 직능을 대표하는 단체들의 설전인 만큼 표면적으로 논리적 오류는 없어 보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지적에도 일관성을 갖췄습니다.
다만, 정작 중요한 환자들의 의견은 배제됐습니다. 의사와 약사, 한약사 모두 자기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환자를 들먹일 뿐 실제로 환자들의 생각은 담지 못했습니다.
추측컨대 환자들의 생각을 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귀를 닫은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환자는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약이라 하더라도 특정 제품만 선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며, 반대 사례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약사 약국 문제에선 어떤 약국이든 복약 지도만 충분히 해주면 만족한다는 환자가 대다수를 이룰 여지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유리하면서 동시에 통일된 환자들의 의견을 수렵하지 못할 바에야 주장과 근거만을 갖춘 일차원적 논쟁을 펼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린 걸 수도 있는 거죠.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의사들과 약사들, 한약사들이 명운을 걸고 벌이는 싸움에서 최종 소비자이자 당사자인 환자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처럼 여겨지게 됐습니다. 직능 단체의 싸움이 건곤일척처럼 보이는 반면 환자들 견해는 소수의견으로 격하되는 꼴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