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의 이른바 ‘갈지자 행보’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여기에 HD현대와 한화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조율자 역할을 해야 할 방사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한목소리를 내야 할 K-방산 원팀이 안에서부터 균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업계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의 보안 감점 적용 기간이 올해 11월에서 2026년 12월까지 1년 이상 연장된 것을 두고, 한화 측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물론 한화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양사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방사청이다. 갈등을 조율하고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할 주무 기관이 되레 업계의 분열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에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HD현대와 한화는 팀을 이뤄 최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독일과 최종 결전을 앞두고 있다.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납기 경쟁력과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캐나다는 해양 안보를 중시하는 나라로, 납기 준수가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납기일을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하지만 방사청의 조율 실패로 양사 간 신뢰가 무너진다면, 그 어떤 기술력도 의미가 없다. 소통이 끊긴 파트너십으로는 수십조 원 규모의 국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어렵다. 오히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업계에선 “이번 사업만 성공해도 최소 10년은 안정적인 수주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인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한국은 잠수함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도약할 기회를 잃게 된다.
실제로 두 회사는 지난해 11월 14조원 규모 호주 호위함 수주전에서도 원팀을 이루지 못해 일본에 밀렸다. 일본이 수주한 그 건 하나로 지난해 방산 매출이 한국을 역전했다. 한국은 지난해 방산 총 매출이 약 13조2000억원이었다.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모두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방사청이 진정한 조율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