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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브라이덜 샤워
입력 : 2025-10-14 오후 6:20:15
추석 연휴가 한창이던 어느 날, 14년 지기와 '싸고 적당한' 술자리 공간을 찾다 엉겁결에 예약한 곳이 하필 브라이덜 샤워 전용 파티룸이었습니다. 
 
한 숙박 예약 플랫폼으로 '최저가' 결과만 보고 덥썩 예약하고는 별다른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데요. 문을 열자 레이스 커튼, 꽃무늬 드레스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펄럭였습니다. 
 
"여긴…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닌데?" 
 
그 말도 잠시, 배달앱을 통해 도착한 삼겹살과 미리 준비한 고량주 한 병이 테이블에 놓이자 어색함은 한층 짙어졌습니다. 케이크 대신 삼겹살, 샴페인 대신 고량주, 꽃다발 대신 일회용 젓가락…. 배경과 따로 노는 그 공간에서 두 남자의 민망함은 접시처럼 얇게 깔렸는데요. 
 
잠시 말문이 막혀 서로의 시선이 공중을 헤매다 벽 쪽 거울로 향했습니다. 거울에는 핑크빛 조명 아래 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비쳤습니다. 낯선 결혼식장에 잘못 들어온 하객처럼 보이는 장면에 동시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 웃음은 방 안의 공기를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었는데요. 
 
그제야 종이컵에 고량주를 따르고, 친구는 눅눅해진 삼겹살과 김치를 젓가락으로 툭툭 치며 권했습니다. 말수를 되찾은 두 사람은 "대체 왜 이런 방을 잡았냐"며 탓도 해보고 "그래도 방음은 좋다"고 자조 섞인 칭찬도 덧붙였습니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꾸며진 공간에서, 그동안의 시간을 곱씹고 환기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끝내 웃음으로 마무리된 그날의 해프닝은 오래된 친구 사이의 편안함으로 남았고, 그날만큼은 우정을 견고히 하는 리허설 무대가 됐습니다. 
 
(사진=박재연 기자)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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