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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허무와 싸우는 이들
입력 : 2025-10-13 오후 5:42:51
명절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누군가는 묻습니다. "결혼은 언제 하냐", "좋은 사람 없냐". 듣는 사람의 표정은 살짝 굳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마음을 단순히 잔소리라고 넘기기엔 망설여집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나면 결혼과 출산, 가정이라는 궤도에 자연스럽게 오르기 어렵다는 경험,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다가오는 '허무'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말 속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시기를 맞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사회적으로도 제 몫을 다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묘하게 닮은 문장이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 "요즘은 그냥 허무해." 열심히 일하고, 성취도 이루었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그들은 다시 떠납니다. 누군가는 푸른 바다가 있는 동남아로, 누군가는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걷기 위해 유럽으로 향합니다. 여행이 여유의 상징이라기보다, 허무를 밀어내기 위한 잠시의 숨구멍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의 여행은 즐거움보다는 '거대한 허무와의 싸움'에 가깝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곧 채워야 할 여백이 되기 때문입니다. 허무가 스며드는 그 틈을 막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일정을 세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풍경 속으로 자신을 던집니다. 그러나 돌아오면 언제나, 불이 꺼진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자의 삶은 분명 자유롭습니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시간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의 끝에는 종종 깊은 정적이 있습니다. 결혼은 누군가에게는 속박이지만, 동시에 방향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책임을 나누는 과정은 힘들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만들어줍니다. 반면 혼자 사는 이들은 그 이유를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합니다.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매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자격증을 따고, 전시회나 공연을 찾아다닙니다. SNS 속 사진은 언제나 생기 있고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공허를 밀어내기 위한, 조용한 몸부림입니다. 
 
결국 누구나 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 허무한 백지 위에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울 것인가". 이 물음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작점이 됩니다. 허무는 지워야 할 감정이 아니라, 채워야 할 빈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무엇을 쓸 것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인생이 됩니다. 
 
(사진=픽사베이)
 
 
신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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