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중계나 뉴스를 볼 때 말고는 좀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던 제게, 올해 들어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바로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을 돌리며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재방송을 다시 보는 것인데요.
<사랑과 전쟁>은 한때 금요일 밤마다 안방을 점령하던 국민 드라마였습니다. 부부의 갈등, 불륜, 이혼 소송을 극적 재연으로 풀어내며 '막장' 드라마의 시초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2025년에 다시 보니 그 막장 전개 뒤에 현재와는 달라진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법의 거리감이었습니다. 방송 속 법률 상담은 법원에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뤄졌지만, 지금은 법률 상담 앱 하나로 변호사와 연결되고, AI가 판례도 정리해주면서 접근성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증거의 범위도 드라마 방영 당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2000년대 드라마에서는 '휴대전화 통화 기록'이나 '몰래 찍은 사진' 정도가 갈등의 단서였다면, 2025년 드라마에서는 메신저 대화 내역, SNS 흔적, 위치 데이터 등이 남녀 간 주요 갈등 소재로 쓰이죠.
갈등 구도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직장인 남편의 불륜'과 '헌신적인 가정주부 아내'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됐지만, 남성의 돌봄 참여,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보편화되면서 관계의 균열은 성별 대립이 아닌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사랑과 전쟁>을 보게 만드는 이유는 솔직한 대사와 인간적인 면모가 여전히 낯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장된 장면 속에서도 결국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과 상황이 포착되기 때문인데요. 드라마는 수년 전에 종영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크고 작은 '사랑과 전쟁'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시대와 환경은 달라졌어도 결국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공감을 전해주는 가장 질긴 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챗GPT 생성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