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미국 유학 시절 경험담입니다. 백인이 다가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자, 그는 "너희야말로 조상 나라로 돌아가라"고 응수했다는 말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은 17~18세기 유럽 개척자들과 아프리카 노예 이주가 뒤섞이며 다민족 사회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19세기에는 아일랜드·독일·이탈리아 출신 대규모 이민이 이어졌고,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에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출신이 크게 늘었습니다. 현재 미국 내 이민자는 약 4500만명. 반면 원주민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500년 전 1500만~2000만명에서 25만명으로 줄었습니다. 결국 미국 사회 전체가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문 기술 인력이 미국에서 일하려면 'H-1B' 같은 취업 비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발급 문턱은 점점 높아졌고, 한국 인력들은 단기 출장(B1)이나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체류하며 일하는 편법적 관행에 의존해왔습니다. 4일 조지아주
현대차(005380)-
LG에너지솔루션(373220)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체포·구금된 사건도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H-1B 비자 수수료를 연간 10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100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6년간 고용 시 총 60만달러, 약 8억원이 넘는 비용입니다. 미국의 성장 동력이 세계의 두뇌를 끌어들인 데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길을 스스로 좁히는 셈입니다. 또 9월부터는 브랜드·특허 의약품 수입에 100% 관세를 부과하되, 미국 내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면제 혜택을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응해
셀트리온(068270), GC녹십자홀딩스,
차바이오텍(085660) 등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서둘러 현지 거점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미 뉴저지·텍사스·뉴욕 등에 생산시설을 확보하거나 증설을 추진하며 관세 리스크에 대비 중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한미가 합의한 3500억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 펀드가 '선불'로 이뤄질 것이라고 26일 언급했습니다. 이 모든 조치들이 정말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인지, '돈이면 다 되는' 비즈니스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본래 맨손으로 이민 와 성공을 일군 개척자 정신을 자랑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자 장사를 하고, 투자를 강요하며, 공장을 짓지 않으면 관세를 매기겠다고 압박하는 나라로 변했습니다. 외국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을 배척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미국이 스스로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의 힘 '멜팅팟(Melting Pot)'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결국 미국에 독이 될 것입니다.
미국 이민 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귀국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얼굴 배너를 든 시민단체가 시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