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값 5000원 시대입니다. 주류 원가 상승,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이 겹치면서 전국 어디서나 소주 한 병 5000원은 하나의 '국룰'처럼 자리 잡았는데요.
다만 제가 사는 동네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어느 식당이 '소주 2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걸자 손님이 몰렸고, 곧 주변 가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맞추게 됐습니다. 동네 전체가 출혈경쟁에 들어선 것인데요.
겉보기에는 손님들이 이전보다 늘어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소주 공장 출고가는 대략 1200원 안팎, 유통 납품가는 1700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매가를 2000원으로 낮추면 그만큼 가게는 원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익은 줄어드는 반면 비용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전기세, 인건비, 임대료는 여전히 오르고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값싼 소주'는 곧바로 손실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이 경쟁이 자율적으로 멈추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 가게에서 먼저 가격을 올리면 손님은 다시 옆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질로 잡은 꼴입니다. 결국 남는 방법은 버티기뿐인데, 체력이 약한 가게부터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인들의 불만도 컸습니다. "왜 저 집이 먼저 시작했냐"는 원망과 함께 "결국 다 같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쏟아냈는데요. 일부 업주들 사이에서는 "담합해서라도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실행은 어렵습니다. 굳이 공정거래법 문제까지 가지 않아도 손님들 눈치 때문에 담합은 쉽지 않죠.
(이미지=챗GPT 생성이미지)
손님 입장에선 당장은 싼 가격을 누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골목상권의 다양성과 생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결정인 셈입니다. 출혈경쟁이 소비자에게도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가격 구조가 무너지면 결국 선택지가 줄어들고, 서비스 품질마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소주 한 병 2000원 경쟁은 '싸다, 좋다'의 문제를 넘어선 골목상권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드러내는 징후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