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장애인권운동 동아리에 우연히 가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은 제 인식을 바꾼 전환점이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다는 것, 장애인도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그 안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르고 저마다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변에 장애 아동을 키우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부모처럼 아이의 미래를 위한 치열한 사교육이나 대학 입시 경쟁은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부모가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입니다. 일반 학교 특수반에 입학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마땅한 학교가 없어 이사를 가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장애 학교가 부족하니 통학 자체가 큰 고통이고, 장애인 콜택시를 타기 위한 대기 경쟁도 치열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말 그대로 사치가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12일 서울시의회가 지체장애인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 성진학교 신설을 의결한 소식은 환영할 만합니다. 동북권 지체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총 22학급, 136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개교 목표 시점은 2029년 3월. 학부모들은 앞으로도 몇 년간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지연은 낯설지 않습니다. 중랑구 동진학교 역시 당초 2017년 개교를 내걸었지만, 현재 목표는 2027년으로 늦춰졌습니다.
현재 전국 특수학교는 196곳.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울시의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특수교육 대상자가 402명 늘었지만, 그 기간 새로 생긴 특수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8곳에는 여전히 특수학교가 없습니다. 결국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를 먼 지역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매일 긴 통학길을 견뎌야 합니다. 당연히 생계와 돌봄에도 큰 부담이 됩니다.
성진학교도 추진 과정에서 주민 반대라는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2017년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을 촉구하며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번에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150여 명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습니다. 특수학교 신설이 여전히 '눈물의 정치'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예전에 동아리에서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다." 사고와 질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아이와 노인,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된 사회가 곧 비장애인에게도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등이 8월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인근에서 연 '성진학교 설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