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을 향한 이중적 시선을 처음 체감한 건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당시 입사한 회사의 노조위원장 선배가 주말에 돌잔치를 연다고 했다. 평소 허름한 차림이던 그가 화려한 선상 돌잔치를 여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그를 평소 살갑게 대하던 우리 팀 팀장은 “부담 없이 가고 싶은 사람만 가라”고 짧게 한마디했다.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고 갔는데, 남자 동기들만 있었고 여자 동기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돌잔치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월요일에 출근하니 팀장이 다녀온 남자 동기들에게 “그런 자리에 뭐 하러 갔다 왔냐”며 면박을 주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분위기 파악을 해보니 “노조위원장이잖아”라는 얘기들이 오갔다. 여자 동기들은 눈치껏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화려한 돌잔치를 치렀던 선배는 타사로 이직해 메인 앵커 자리를 꿰찼고, TV에서 본 그의 모습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시대가 노동자 권리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업계 전반의 연봉이 오르면 먼 길을 돌아서라도 언젠가는 그 혜택이 나에게도 미세하게나마 닿지 않을까 뭐 이런 마음도 없지 않았다. 주 4.5일제 시대에 들어서면서 적어도 예전처럼 무턱대고 야근을 시키는 풍토는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블라인드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는 달랐다. “노란봉투법 통과되면 직고용 요구 커지겠지”, “공장 하청들 돈 더 달라고 떼쓰면 조선소들 문 닫아야지”, “누군 바보라서 죽어라 공부해 해당과에 들어갔을까 봐”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대기업 홍보 담당자들을 만나면서도 의외였던 점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조에 소속돼 있지 않았다. 취재 중 노조 입장을 묻으면 사측 입장을 말하며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으신가 봐요?”라고 물으면 “노조는 생산직만 가입하지 않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노조는 블루칼라, 현장 노동자의 영역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의 권리는 지지하지만 회사의 이익, 더 나아가 나의 이익이 줄어드는 건 싫다는 감정이 공존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의 논의도 ‘우리’가 아닌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불거졌던 ‘역차별’ 논란은 앞으로 더 자주 나타날지도 모른다.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정책 속에서, 이미 정규직인 청원경찰이 비정규직보다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불공정성 문제는 당시에도 논란이었다.
노동자의 권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면서도 그 변화가 내 몫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얽힐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내일이 무탈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각자의 이해가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도 노란봉투법이 다양한 마음과 시선을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