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현금 필요 없어요?"
재차 확인하며 정말로 환전은 하지 않고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출장 내내 중국 동전과 지폐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QR왕국인 중국에서는 정말 아무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의 한 편의점에 설치된 QR 리더기. (사진=변소인 기자)
무비자 정책 이후 한국 청년들이 중국 여행을 활발하게 하면서 사전 준비물을 꼼꼼하게 일러둔 덕에 저는 그들이 가르침대로만 따랐습니다. 알리페이, 위챗을 설치하고, 통·번역을 위한 파파고, 웨이팅앱, 배달앱, 고덕지도 등을 내려 받았습니다. 출국 전까지 현금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불안했지만 상하이 여행을 마친 이들의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간체자의 벽에 종종 막히곤 하는 중국이지만 결제만큼은 그야말로 직관적이었습니다. 지하철 개찰구에는 QR을 인식하는 기기가 나란히 설치돼 남들이 찍는 대로 갖다 대기만 하면 순식간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인식률은 또 얼마나 뛰어난지 대충 갖다 대기만 해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하철을 오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택시를 탈 때도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에서 부르고 결제까지 할 수 있어 앱을 여러 개 작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택시 도착 위치를 잘못 설정해서 기사에게 말했더니 앱에서 목적지를 수정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생소한 기능이라 반신반의하며 새로운 목적지를 입력했더니 기사가 바로 '하오'라고 답했습니다. 앱에서 수정하자마자 기사용 내비에도 바로 수정된 목적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저도 한번 도전했습니다. 서울 따릉이 처음 타던 때를 생각하면 과연 자전거에 탑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긴 했습니다. 타는 법을 찾아볼 법도 한데 더위에 지친 탓에 무작정 알리페이로 자전거에 붙은 QR코드를 스캔했습니다. 안 되면 말자는 심정이었는데 QR은 정확히 인식이 됐습니다. 어두워서 QR이 잘 보이지 않자 앱에서 자동으로 플래시를 켜고 QR을 확대해서 읽어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깨알 기능이었습니다. 별다른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몇 가지 동의를 하고 단계를 진행하니 바로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식당에 앉으면 테이블에 붙은 QR을 찍으면 메뉴판이 표출돼 사진을 보며 주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대부분의 식당에선 QR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문도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내면 알아서 결제가 됐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모든 결제를 두 가지로 했습니다. 사실 한 가지만 사용해도 됐는데 해외카드 수수료를 아끼고자 위챗페이 행사 때문에 위챗페이를 덤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상점에선 두 가지 간편결제 시스템을 동시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소문대로 구걸도 QR로 하고, 인기 빵집에서 빵을 사서 되파는 리셀러도 QR로 비용을 챙기는 곳이 중국이었습니다.
한 번은 좌판의 소품에 마음이 동했습니다. 백발 어르신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이었는데요.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이분이 간편 결제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제 마음대로 판단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고 알리페이 사용이 가능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번에 QR코드를 내어주셨습니다. 심지어 제가 결제하는 동안 이 어르신은 스마트폰으로 배달 음식을 구경하고 계셨습니다.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제 착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QR 결제 방법을 알리고, 상인들에게는 QR코드로 결제 받는 법을 어떻게 설득해서 알리고 보급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상하이는 알리페이, 위챗페이로 대통합이 돼있었습니다. 혹자가 우리나라 간편결제 시스템이 중국보다 4년 정도 늦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 각종 다양한 간편 결제 시스템이 있지만 용처, 사용법이 다 달라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그나마 삼성페이가 가장 널리 사용되지만 이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서만 지원하는 기능이라 제약이 따릅니다. 게다가 알리페이, 위챗은 앱 내에 미니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한 가지 앱에서 다양한 기능을 편리하게 구사해 냈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이 쓰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말이죠.
이처럼 결제 시스템이 통합되면 좀 더 유의미한 사용자의 교통, 금융, 쇼핑 등의 데이터 수집이 가능할 것입니다. 거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데이터 분석 정확도도 올라가고 타깃으로 정책을 펴는 것도, 마케팅을 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당장의 편리함보다 향후 더 큰 파급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한국인으로서 조바심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