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하이닉스와 삼성의 경쟁력 차이는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차이보다 더 컸다. 다윗은 적어도 물맷돌이라는 무기가 있었지만, 하이닉스에는 그런 비장의 무기조차 없었다.”(현순엽·김진국·박정식, 『신뢰 게임』, 2025)
SK하이닉스 전 부사장 3인이 SK하이닉스의 성공 비결을 담은 책 『신뢰 게임』에서는 2014년의 SK하이닉스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반도체 가격에 따라 흑자와 적자로 오가던 SK하이닉스는 D램의 가격이 언제 빠질지 노심초사하며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대한 공감대를 키워 나갔다고 한다. 이후 D램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기까지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한 10년의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박정식 전 SK하이닉스 패키지&테스트 담당 부사장,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 담당 부사장, 김진국 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장이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 (사진=교보문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협업’이었다. 저자 3인은 SK하이닉스가 조직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다양항 노력을 서술했다. 대표적인 문화가 바로 원온원(일대일 면담)이다.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임원과 팀장, 팀장과 직원이 일대일로 하루 단위의 업무부터 중장기 전략까지 격의 없는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당시 미래기술연구원을 이끌었던 한 임원은 “원온원이 만든 장점이 하이닉스의 기술 경쟁력을 전체 최적화 관점에서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대일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수평적 협업 기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소통을 기반으로 신뢰 문화 구축에 힘을 쏟은 것은 SK하이닉스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하이닉스는 1999년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당시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가 합병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만들어졌다. 현대·LG·SK의 세 기업이 어우러지기 위해선 소통과 협업이 필수재였다. 저자들은 원온원 등 소통 문화에 깔린 신뢰가 혁신을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업문화는 단순 급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최근 메타 내 인공지능(AI) 핵심 인재들이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에도 이탈한 것을 두고 메타 조직 내부의 관료주의와 불안정한 조직문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돈 만큼 중요한 게 기업문화다. 뛰어난 인재들이 몰리는 ‘좋은 기업’이 되도록 ‘좋은 기업문화’ 구축에 신경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