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남자 친구는? 아기도 낳아야지"
잠깐 앉아 있다가 가라는 할머니 말에 엉덩이를 붙인 게 화근입니다. 포도부터 감주에, 순대까지 내어준 경로당 할머니들은 2시간 넘게 질문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네 할머니가 그토록 말하던 손녀가 너였냐"로 시작해 "결혼해서 아기 낳아라"로 끝나는 무한 굴레입니다.
시선은 TV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방송에 고정한 채 머쓱하게 웃다 나왔습니다. 평생 혼자 살 생각은 없지만 아직 결혼도, 아이도 먼 얘기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하나 내 것 없는 서울살이에 2세 준비가 가능할진 의문입니다.
그나마 할머니들의 염원 덕분인지 최근 2년 새 합계출산율은 소폭 상승 중입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은 후 △2024년 0.75명 △2025년 0.82명(1분기)으로 상승세를 보입니다.
1990년대 초반 출생한 '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가 출산 주력층으로 진입하며 반등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입니다. 이들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의 자녀들로 30대 초·중반의 결혼 적령기에 진입했습니다.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안심은 이릅니다.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 돼서가 아닌 인구 내부적인 요인이 반등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게다가 0.82명은 대체 출산율 2.1명에 반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대체 출산율은 한 세대가 이전 세대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출산율을 뜻합니다.
출산율 반등은 분명 반가운 신호지만, 그것만으로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아이를 낳아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다만 그 믿음을 쌓는 일이 시작됐는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