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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를 든 의사
입력 : 2025-09-05 오후 3:36:56
지난 1일, 윤석열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에 반발해 지난해 2월 병원을 떠난 주요 병원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반기 수련이 시작되며 의료 현장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소아청소년과나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경우 복귀율이 50%도 안되는 경우가 발생했고, 전남대병원은 소아 응급실 진료를 축소하려다 여론에 부딪혀 하룻밤 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의료계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상, 의료사고 위험과 책임 부담, 수가 체계 불균형 등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핵심 원인이라는 겁니다. 이를 뜯어보면 결국 핵심은 '돈'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실제로 의대 내부에서도 소위 '돈 잘 버는 과'로의 편중 현상이 뚜렷합니다. 과거에는 신경외과 등 생명과 직결된 수술을 맡는 과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피부과·성형외과처럼 고수익이 보장되는 분야로 몰리는 추세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필수의료 진료협력체계 구축,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인력 양성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자, 대한의사협회가 "과거에도 실패한 법"이라며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의료의 윤리와 공공성보다 시장 논리가 앞서는 분위기입니다. 
 
이 현상은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성적 상위권 이과생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이공계열 대신 의대로 진학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주요 과학 강국에서는 고득점 학생들이 여전히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으로 향합니다. 특히 중국은 올해만 8만명의 STEM 박사를 배출할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미국의 두 배를 웃도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반면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의 STEM 전공 비율은 20%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STEM 전공자 비율이 OECD 최하위권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옵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진짜 돈을 많이 벌려면 본인의 기술로 기업을 창업하는 게 맞지만, 안전 선호 심리가 성적 상위 학생들을 의대로 향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의사들조차 의대 공부는 특별한 천재성이 아니라 '엉덩이 힘', 즉 체력과 암기력에 달려 있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투자한 비용을 '수익률'로 회수하려는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조차 돈의 논리에 휘둘리고, 우수한 인재들이 의료계로 빨려 들어가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냅니다. 마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 규모인 23조7000억원으로 편성했습니다. 올해 추경예산 대비 12.9% 늘어난 규모이며, 연구개발(R&D) 예산은 21.6% 증가한 11조8000억원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 예산만 5조1000억원으로, 정부 전체 AI 예산(10조1000억원)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산을 늘려도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과 공학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돈은 허공에 흩어질 뿐입니다. 과학을 외면하고 안전한 길만 좇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의료와 과학 모두가 사람을 위한 길로 나아가도록, 사회적 균형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의 일부가 지난 1일 의료 현장으로 복귀한 가운데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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