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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어디에 있나
입력 : 2025-09-05 오전 9:41:13
“구조조정까지는 아니고요. 매년 하던 희망퇴직입니다.”
“정부가 어디 문을 닫아라 마라 할 권리까진 없지 않나요?”
 
전화기 너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괜찮다는 것. 석유화학, 철강 업황이 바닥을 헤맨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지만, 대기업의 워딩은 다소 무심하다. “우리 업계가 지금 힘든가요?”라는 반문까지 돌아올 정도다. 
 
 
(이미지=챗GPT)
 
요즘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위기 업종에 대해 고강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업 재편, 경쟁력 강화. 익숙한 단어들이 정책 발표와 보도자료, 기사를 채운다. 
 
문제는 이 말들이 현실 어디쯤에 존재하느냐다. 공청회가 열려 가보면 참석자들은 정부 관계자와 상위 그룹사 임원들이 대부분이다. 토론회는 긴박하고 진단은 날카롭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이미 사업구조 다각화, 친환경 전환 투자 계획을 갖추고 있다. 위기라는 공감대는 있지만 절박함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결론도 늘 같다. ‘자율적 체질 개선’ 또는 ‘사업 재편’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비용 측면에서 지원해 달라는 것.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사이 현장의 중소·중견 기업들은 고사 직전이다.
 
기자가 매일 드나드는 출입처는 대부분 대기업이다. 석유화학·철강 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전화도 이메일도 이른바 ‘상위 0.01%’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수는 약 740만개로 이 중 대기업은 약 600여개다. 전체의 약 0.01%다. 
 
반면 산업 현장에서는 고용 유지를 못 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자금줄이 마르기 직전인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전화 취재를 한 출입처에서도 산업단지에 가보면 처음 듣거나 간판도 없는 중소업체들이 즐비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정책과 대화의 대상은 여전히 ‘견딜 수 있는 쪽’에 머물러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 구조조정이 필요한 분야는 현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기업들이다. 정부는 ‘업계’와 간담회를 열지만, 정작 그 업계는 ‘생존 가능한 기업’ 위주로 구성된다. 그렇게 정책의 그림자 바깥으로 밀려난 업체들은 대책이 아닌 통계 속 숫자로만 존재한다.
 
정책은 있지만 대상은 빠져 있다. 생존이 가능한 자와 생존이 어려운 자는 같은 산업에 있지만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이 괴리를 좁히지 못하면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또 하나의 ‘정책 용어’로만 남을 것이다. 그 사이 공장 하나가 조용히 문을 닫고 불이 꺼지는 산업단지의 밤도 늘어갈 것이다.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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