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마트에서는 금붕어를 한가득 모아놓고 무료로 나눠 주는 행사를 하곤 했습니다. 불과 10년 전, 제가 대학생 때에도 집앞 대형마트에서 그런 이벤트를 했는데요. 당시 같은 동네에 살던 고등학교 동창은 그 금붕어 어항을 지나갈 때마다 치를 떨며 싫어했습니다. 좁은 어항 안에 금붕어 수백 마리가 가득 차 있었거든요. 동물 학대라는 이유였습니다. 그 친구는 해당 대형마트에 수차례 전화해서 '동물 학대 아니냐', '당장 해당 이벤트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는 그 이벤트를 접었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 친구에게 공감하는 '척'을 했지만, 사실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 정돈가? 포유류 같은 동물도 아니고 자그마한 금붕어인데 말이죠.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고 있을 때였거든요. 고양이를 많이들 반려동물로 삼고 친근해진 지금에서야 '길냥이' 하며 예뻐하는 시선들이 생겼지만, 그때 도둑고양이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가까이 가면 할퀴지 않을까,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다니는 그런 존재요. 자연스럽게 도둑고양이라고 칭할 때도 그 친구는 걔(고양이)는 그냥 길에 사는 건데 왜 도둑 취급을 하느냐며 화냈습니다. 갑자기 난 왜 혼난 거지? 당황스러웠지만 그 이후로는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들였어요. 혼나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그 친구 말이 틀린 부분이 없었거든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도둑고양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게 됐죠.
시간이 흘러 저도 나름대로의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하면서 '감수성'이라는 것을 배운 뒤에야 그 친구가 많이 나아간 것이었구나 깨달았습니다. 금붕어 무료 분양 이벤트는 아이들에게 동심은커녕 생명 경시적인 사고를 부를 수 있음은 물론이고요. 다시 돌이켜보면 그 좁은 어항에 수백마리 금붕어가 빽빽이 들어차 있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합니다. 유독 물고기는 이름부터 물'고기'라고 부르며 가볍게 대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낙산 해수욕장에 갔는데요. 저녁에 말들이 마차를 끌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게 뉴스 헤드라인에서 보던 그 꽃마차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저기 봐, 말이 있어'라고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또 분개를 하더군요.(금붕어 사건과 또 다른 친구입니다) 자기가 살던 일산에도 저런 마차가 있었는데, 해당 지자체에 계속 민원을 넣어서 그 사업을 못하게 해달라고 전화를 수시로 걸었답니다. 나중에는 해당 공무원이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리며,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요.
그 친구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니요. 사람이 달라 보였습니다. 전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거든요. 작년 베트남에서 꽃마차를 보면서 작은 당나귀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쯤이야... 하며 소비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소수자성을 가진 존재들이 당하는 억압에 함께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감탄스럽습니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붙지 않습니다. 마땅히,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공감하고 이입하는 건데요. 그런 감수성은 배움은 물론이거니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지만 늘 들여다보는 수고로움이죠.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고, 좁은 통에 모아둔 수백 마리 금붕어를 무료로 나눠 주고, 꽃마차가 버젓이 영업하는 세상에서는 이렇게 화내는 사람들이 '유난'스러워 보이겠죠. 하지만 당장 10년만 지나면 지금을 야만의 시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들 덕분에요.
금붕어. (사진=픽사베이)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